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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에게 북한은 과연 무엇일까

한반도, 오늘

by gino's 2018. 10. 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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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달 26일(현지시간) 뉴욕의 롯데뉴욕팰러스 호텔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을 갖는 자리에서 불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았다는 편지를 품속에서 꺼내들어보이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아베 숙원 북·일 납치문제 협상, 폼페이오 방북으로 ‘신호 대기’

우리에겐 국치일이었던 지난해 8월29일 오전 6시2분. 일본 홋카이도 주민들의 손전화에 긴급 경보가 떴다. 북한이 이날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일본 영토 위로 발사하자 재난 및 긴급상황을 통보하는 ‘J-얼럿(Alert)’ 시스템이 발동된 것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대처 방식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국민적 불안을 다독이기는커녕 되레 불안을 증폭시켰다. 지난해 4월13일에는 참의원 외교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이 사린가스를 장착한 미사일 발사능력을 갖췄을 것”이라고 말해 지난 세기말 사린가스 지하철 테러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일본 국민들을 한껏 자극했다. 나흘 뒤엔 중의원에 출석해 “유사시 (대한해협을 넘어올 한국인) 난민수용 시설 설치 및 난민심사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남이건, 북이건 한반도 거주민들이 아베의 혀끝에서 졸지에 ‘가상난민’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한반도 위기는 국내 정치적으론 아베에게 호재였다. 높아진 위협지수가 평화헌법 개정 추진에 좋은 핑계가 됐기 때문이다.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 3차례 남북정상회담과 3차례 북·중 정상회담, 한 차례 북·미 정상회담에서 모두 일본은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

20년간 덜컹대는 납치문제
북핵에 막혔던 협상 기류 변화
아베는 김정은 직접 대면 제의
북한, 신뢰 증표 제재 완화 거론

한반도 위기 이용 정권 연장
북한 핵실험 과장 불안감 조성
안보적 위협을 정치적 호재로
북핵 해법은 미국과 보조 맞춰

한반도 평화 무드가 호기로
북·일 관계 비핵화 진전 연계
폼페이오 행보 가시적 성과 땐
북·일 교착 국면 전환 청신호

북·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각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납치자 문제를 거론해줄 것을 부탁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 3월 북·중 정상회담 소식은 신화통신 보도를 통해 파악해야 했다.

이번에도 아베가 믿을 구석은 ‘푸른 눈의 쇼군(將軍)’이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마라라고 휴양지로 날아가 “북한 문제가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를 지배했다”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밝혔다. 트럼프로부터 “(납치 문제는) ‘신조’에게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기에 피랍자 일본 송환에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면서 의기양양했다. 트럼프는 6·12 싱가포르 대좌 뒤 아베의 요청대로 납치 문제를 언급했음을 밝히면서도 “그 문제는 처리될 것”이라고 간략하게 언급했다. 어차피 북·미 정상 간 대화 탁자에서 납치 문제는 핵심이슈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납치 문제는 아베 자신이 풀어야 한다.

일본은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해 철저하게 미국과 보조를 맞춰왔다.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전까지는 대북 제재 해제도, 북·일관계 정상화도 없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20년 가까이 지속된 납치 문제의 ‘대못’이 박혀 있다.

납치 문제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선언을 계기로 불거졌다.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가 1980년대 초까지 일부 ‘망동주의자’가 벌인 일이라고 시인,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일본 측이 확인을 요청한 11명 중 4명은 생존하고 6명은 사망했으며, 1명은 확인이 안됐지만 다른 1명이 생존해 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일본은 북한이 일시 귀국시킨 피랍 생존자 5명을 되돌려보내지 않는 무리수를 두었다. 여기에 북한 측이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의 것이라고 전한 유해의 유전자(DNA) 검사 결과 진위 논란이 불거지면서 일본 내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아베는 관방 부장관이던 당시 생존자 5명의 북한 송환을 막고 나서면서 보수우익의 지지를 결집했다. ‘납치의 아베’가 탄생한 순간이다. 납치 문제는 2006년 첫 총리가 됐고, 2012년 다시 등극할 수 있었던 정치적 자산이었다. 아베가 뜨는 동안 납치 문제 자체는 온갖 미확인 주장과 추측이 난무하면서 실타래가 더 꼬였다.

북핵의 CVID와 납치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다짐해온 것은 아베에게 이중의 족쇄가 됐다. 일본 소외(재팬 패싱)라는 말도 새나온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안쓰러워 보이는 아베의 처지는 여기까지다. 아베의 망신살에 초점을 맞춘 시각으로만 판단한다면 낭패가 될 가능성이 아주 짙다. ‘정치인 아베’의 능력을 외면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자민당 총재 3선에 성공, 2021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은 그다. 전후 최장기 집권을 앞두고 북한 변수 탓에 주저앉을 것이라는 가정은 희망적 사고에 가깝다. 아베는 오히려 지난 2일 발표한 새 내각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납치문제담당상을 겸임토록 하면서 힘을 실어주었다. “납치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겠다”고 거듭 천명했다. 김정은의 북한이 던진 비핵화-체제보장의 승부수는 아베에겐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아베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대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6·12 북·미 대좌 이후 몇 차례 내놓은 말이다. 이번엔 간접적으로 김 위원장의 용의도 파악했다. 같은 날 한·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그동안 김 위원장에게 납치 문제를 세 차례나 언급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김 위원장도 ‘적절한 시기’에 일본과 대화에 나서 관계개선을 모색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아베는 납치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과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일 도쿄 총리공관에서 새 내각을 공개한 뒤 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EPA연합뉴스

북·일은 이미 사실상의 물밑교섭을 시작했다. 지난 7월 베트남에서 실무교섭을 벌인 데 이어 지난달 26일 유엔에선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고노 다로 외무상의 20분간 회담이 성사되기도 했다. 북한은 지난 8월27일 스파이 혐의로 억류했던 일본인 관광객을 보름 만에 전격 석방, 기류 변화를 짐작하게 했다.

북한과의 교섭에서 아베는 이미 실력을 입증했다. 2014년 7월 스웨덴 스톡홀름 북·일 합의를 통해 납치 문제 재조사를 전제로 대북 제재 일부 완화를 합의했다. 2012년 8월 베이징에서 10년 만에 열린 북·일 적십자 회담을 살려, 북한의 청진·함흥·평양 등지에 조상의 뼈를 묻고 온 일본인들의 숙원을 풀어주었다. 일본인 후손들은 이듬해 말까지 6~7차례의 성묘를 할 수 있었고, 긍극적으로 최고 4만기에 달하는 유해를 일본으로 송환키로 했다. 그중 우선순위는 스톡홀름 합의였지만, 2016년 1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중단됐다. 역으로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를 보인다면 다시 잡을 수 있는 고리다.

북한 입장에서 납치 문제와 북·일 관계개선 문제는 북·미 협상과 구조가 비슷하다. 어차피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다. 완전한 제재 해제는 그때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사이 제재를 다소라도 완화하고 이를 토대로 최소한 인민경제의 족쇄만이라도 풀려는 것이 북한의 중간 목표이다. “북한은 내년 상반기 중 제재를 완화해 인민경제를 살리고, 비핵화를 진행하면서 2년 뒤쯤 비핵화와 함께 제재 자체를 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북한 고위층의 속내를 듣고온 국내 인사의 전언이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달 2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비핵화는 미국이 우리로 하여금 충분한 신뢰감을 가지게 할 때만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일본에도 신뢰의 증표로 제재 완화를 거론하고 있다.

북·일 양자 간에 거론할 수 있는 제재는 유엔 안보리 제재가 아니다. 일본의 독자 제재이다. 스톡홀름 합의 당시 일본이 합의해 시행했던 총련 간부들의 방북 뒤 재입국 허용, 대북 송금 및 방북 시 소지현금 한도 증액 등만 원상회복된다고 해도 북한으로선 환영할 사안이다. 납치 문제 재조사 특별위원회를 부활시킬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베가 스톡홀름 합의를 깬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북핵 위협에 공동대응하려는 미국 주도 대북 압력에 동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9월25일 유엔총회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관심은 북한과 일본이 각각 생각하는 ‘적절한 시점’이 언제냐는 것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은 현재 한·일관계는 관심이 없고 북·일관계에 다걸기를 한다고 할 정도로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이라면서 “다만 북·미관계를 앞질러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북한의 납치 문제 재조사와 일본의 제재 완화라는 필요가 들어맞는다면 문제 해결엔 시간이 걸려도 대화, 특히 북·일 정상회담은 언제든지 열릴 수 있다. 스톡홀름 합의에서 기왕에 마련한 문제 해결의 틀도 갖춰져 있다.

이 대목에서 트럼프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비핵화와 관련해 “시간싸움(time game)을 하지 않겠다”면서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아니면 5개월이 걸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를 장기 목표로 설정한다면 중간 단계에서 제재 일부를 완화할 필요는 미국과 일본에 다 있다. 납치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이 훨씬 절실하다. 일본이 2002년 9월 평양선언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의 성격을 담아 약속한 대북 경제협력은 일부 제재가 완화된다고 해도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 만질 수 있는 종잣돈이 아니다.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와 마찬가지로 비핵화의 출구에서 거론될 문제다.

일본인 납북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다 시게루(오른쪽)와 메구미의 남편으로 확인된 납북 고교생 김영남의 어머니 최계월씨가 2006년 5월16일 서울 수협중앙회 강당에서 만나 반갑게 손을 잡고 있다.  강윤중기자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 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지난 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뉴욕에서 (미국에) 준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라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에서 시작해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다만 “북한이 풍계리(핵실험장 폐쇄)나 동창리(미사일 엔진공장 폐기)보다 더 나아가서 현재핵(핵탄두 및 탄도미사일)에 대한 가시적 조치를 취하면 우리 정부에서도 (제재 관련)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는 진단이다. 7일 평양에 들어갈 폼페이오의 방북 결과는 북·일 간 이를 가늠할 잣대가 될 수 있다.

희망적 사고일까. 아닐 것이다. 겉으론 대북 최대 압박의 유지를 강조하는 트럼프 역시 생각이 달라질 개연성이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보따리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트럼프에겐 특히 자신의 베프(영원한 친구·BFF)인 ‘신조’가 그토록 사활을 걸고 해결을 구해온 납치 문제가 걸린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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