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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생애 마지막 인터뷰

Interviewees

by gino's 2012. 2. 2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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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고 한달 남짓 됐을때 하워드 진 선생이 돌아가셨다. 마지막 언론인터뷰가 된 셈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수영을 하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것으로 기억된다. 전화선 너머로 들리던 그분의 또랑또랑하고 맑은 목소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하워드 진 “강렬한 시민운동만이 역사와 사회를 바꾼다”

ㆍ미국 원로 사학자 하워드 진 인터뷰

미국의 원로 사학자인 하워드 진(87)은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유대인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일생을 반전과 노동운동에 바치고 있다. 정작 그의 삶을 관통하는 반전·민권 사상은 미국 주류 학계·언론계로부터 외면당했고, 진보진영조차 과격하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다. 그런 그가 경제위기로 고단해진 미국민들의 안방 속으로 파고 들고 있다. 보통사람들의 애환을 기록한 그의 저서 <미국 민중사>가 한 케이블 TV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재조명된 이후다. 지난달 22일 보스턴 자택에 머물던 진과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사진은 그가 제공했다.


-주류 미국사에서 배제된 인디언, 흑인, 백인 블루칼라, 여성의 육성으로 구성한 <미국 민중사>가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1980년) 몇천 부로 소박하게 시작했죠. (지난달 13일) 히스토리 채널이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즈음 200만부를 돌파했습니다. 책은 우리가 지금도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전쟁을 치르고 있고, 너무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거나,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사회적 운동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거죠. 전통적인 역사관이 대통령과 장군들, 산업주의자들의 행동을 강조했다면 나는 그 책에서 보통사람들의 에너지와 행동에 주목했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만큼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다른 관점을 목말라하는 것 같습니다.”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취임을 환영했습니다만 1년이 지난 지금, 그가 약속한 ‘변화’와 ‘담대한 희망’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미국인들은 조지 부시의 정치를 끝내기 위해 오바마를 뽑았습니다. 부시는 두 개의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의 엄청난 부를 날려버렸습니다. 또 많은 국부를 가장 부유한 계층에 안겨준 조세정책을 펼쳤죠. 오바마는 변화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취임하자마자 부시 행정부의 군사주의 정책을 선택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더 많은 군대를 보냈고, 무인비행기를 보내 파키스탄과 같은 곳을 폭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방예산은 부시 행정부보다 더 많이 늘렸습니다. 우리는 오바마가 세계의 분노를 야기했던 군사주의적 태도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9·11 테러의 원인은 다른 나라에 개입한 미국의 대외정책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아직도 군사적 힘을 마구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개혁을 추구하고 관타나모 폐쇄를 약속하는 등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요.

“오바마는 자신이 약속했던 희망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미국을 심각한 경제적 난국으로 몰아넣었던 경제학자들을 자문위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수천억달러의 예산을 필요한 사람들이 아닌, 은행과 금융업체에 주었고요. 많은 사람들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대교수를 했던 오바마가 최소한 헌법적 권리에 관심을 둘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몇가지 중요한 권리를 수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타나모는 여전히 존재하며 수감자 학대 역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7, 8년 동안 재판정에 가보지도 못하고 고통을 받아온 사람들입니다. 오바마는 아직 유죄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관타나모에서 빼내 다른 감옥에 보내려 할 뿐입니다.”

-올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시 의회를 장악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지지 않을까요.

“공화당으로부터 공포를 체험한 사람들이 민주당으로 달려갔지만 하나의 끔찍한 상황에서 다른 끔찍한 상황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민주당은 미국민의 필요와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하원의 다수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공화당이나 만족할 보건의료개혁안을 내놓았고요. 미국 정치시스템은 진정한 진보적 진전을 위한 여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오바마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희망을 저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고 있습니다. 자각의 초기 단계에 진입해 있다고 봅니다.”

-미국 정치제도에 희망이 없다는 말인가요.

“미국 역사에서 어떠한 중요한 변화도 순전히 선거와 투표행위의 결과로 달성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흑인노예, 노동조건 개선, 남부의 인종차별, 베트남전 종전 등이 그랬죠. 제도 정치권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조직적인 사회운동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제도정치는 늘 사회운동이 일종의 국가적 분위기를 조성한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도정치는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지 않습니다. 시민의 요구가 충분히 강할 경우에만 반응합니다.”

-경제위기 1년 만에 월가는 신속히 회복하고 있지만 미국과 세계의 보통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월가의 성공을 잣대로 미국 경제시스템의 성공 여부를 측정해왔습니다. TV뉴스는 매일 밤 다우존스평균지수나 증시의 시세를 보도하고 있고요. 하지만 대다수 미국민이 처한 상황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우존스지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가장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 늘 그래왔듯이 경제시스템이 부유층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한 보통사람들은 쉽게 회복하기 힘들 겁니다.”

-월가발 금융위기로 많은 젊은이들이 직업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가져올 시민운동을 만들어 나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자리를 민간부문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정부가 주도해야 합니다. 미국이 대공황을 겪었던 1930년대에 배운 교훈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났을 때 이른바 자유시장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었습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800만 일자리를 제공했고 많은 젊은이들이 다리와 도로 건설에, 숲과 호수 복원을 위한 공공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정부만이 이렇게 할 능력을 가졌습니다. 개인기업은 이익이 충분치 않다면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큰 정부’에 대한 의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오바마가 ‘미국의 필수적인 이익’이라고 강조한 아프간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아프간에 군대를 보내는 건 미국은 물론, 한국의 국익도 아닙니다. 양국의 군사·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이익일 뿐이죠. 남한 사람들은 정치지도자들이 북한과의 화해를 추구하고 냉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매우 강력한 시민운동으로 가능할 겁니다. 독일처럼 한반도 역시 영원히 분단돼 있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통일이 목적이 돼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인권탄압을 받는 동시에 먹을거리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선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늘 먹는 문제가 우선입니다. 사람은 충분히 먹기 시작해야만 비로소 인권상황에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을 빌미로 북한에 대해 적의를 유지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걸 먼저 도와야 합니다. 그때서야 북한 주민들이 인권을 요구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강연과 집필, 집회 활동이 왕성하십니다. 건강 비결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비밀은 없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많이 걷습니다. 유머 감각을 지닌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도록 노력합니다. 너무 심각한 사람들만 만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심각한 대화와 단순하고도 재미있는 일 간에 균형을 맞추려고 애를 씁니다.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건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잔인하지 않고, 전쟁을 원치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미국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죠. 쇠고기는 가급적 안 먹습니다.”

-2010년의 세계를 전망하신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구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깨닫고, 분노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하늘과 땅, 물에서 일어나는 지구온난화를 깨달아야 합니다. 미래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각국 정부로 하여금 지구온난화 과정을 중단토록 하는 범세계적인 시민운동이 필요합니다. 과학자들의 경고대로 많은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2010년은 변화를 가져올 좋은 해입니다.”


■ 하워드 진 △ 1922년 뉴욕의 유대인 이민노동자 가정에서 출생 △ 브루클린 부두노동자 △ 2차대전 참전, 유럽서 B17폭격기 조종사로 복무(소위) △ 제대군인지원(GI)법 혜택으로 뉴욕대 졸업, 컬럼비아대서 박사학위(역사학) △ 애틀랜타 스펠만대 교수 재직 중 흑인민권운동 가담으로 정직(1963) △ 보스턴대 교수(1964~88), 현 보스턴대 명예교수 △ 저서=<전시의 예술가들, 2003> <테러리즘과 전쟁, 2002> <달리는 기차 위에선 중립일 수 없다(자서전), 2002> <오만한 제국, 2001> <미국 민중사, 1980(2003년 4차개정)> 등


<워싱턴 | 김진호특파원 jh@kyunghyang.com>


입력 : 2010-01-04 17:52:32수정 : 2010-01-04 17: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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