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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북한은 왜 변화를 택했을까

한반도, 오늘

by gino's 2018. 5. 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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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판문점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북한 변화의 기원은 무엇일까.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 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전혀 새로운 상황이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남북관계의 급진전 등 굵직한 주제들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낡은 잣대로 새로운 시대를 가늠하는 것은 오독의 우려가 있다. 자칫 또 다른 적폐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겠는가. 오히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짚어내야 앞으로의 풍향을 가늠하고 그에 걸맞게 대비할 수 있을 터이다.


지난해 핵전쟁의 전운이 짙었던 한반도 정세에 변화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였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 재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올해 남북관계를 개선해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낼 것을 제안했다.


핵 문제에 대해선 상반된 메시지를 담았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북한)의 핵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은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동시에 남측을 향해 “이 땅에 화염을 피우며 신성한 강토를 피로 물들일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연습을 그만두어야 하며 미국의 핵장비들과 침략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 행위들을 걷어치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워드는 핵전쟁연습과 핵전략자산의 한반도 불반입이다. 핵 문제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던 입장에서 처음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16년 7월6일 발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이었다.


성명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위대한 수령님과 어버이장군의 유훈이며,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영도 따라 나아가는 우리 당과 인민의 드팀없는 의지”라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5가지 ‘원칙적 요구’를 발표했다. 우선 남한 내 미국의 핵무기 공개, 남측 내 모든 핵무기와 기지 철폐·검증, 핵타격 수단의 한반도 및 주변 반입 금지를 요구했다. 4번째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이 동원되는 전쟁행위로 우리를 위협공갈하거나,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요구했다. 성명은 마지막으로 ‘남조선에서 핵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시 한·미 양국 정부는 이를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존재하지도 않는 핵 위협을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거나, 주한미군 철수 등 우리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 훼손을 시도하는 억지주장”이라며 무시했다. 국내에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성주 배치 문제로 그해가 끝나도록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간과한 건 아니었다.


■ 주한미군은 1990년대 이후 일관되게 주둔 희망


“김정은 영도 따라 비핵화 의지”
2016년 ‘정부 대변인 성명’ 내
1992년 비핵화 공동선언과 유사

“김일성, 소련 붕괴·중국 쏠림에
1988년 한·미·일과 화해 추진”
미국과 관계정상화도 지속 요구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등에서 20여년간 북한 정보를 분석했던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은 김정은의 북한이 비핵화 대화 용의를 처음 밝힌 것이라고 짚었다. 칼린은 같은 해 7월12일자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 기고문에서 “북한의 요구들은 필요조건이 아니라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공개 제안으로 봐야 한다”면서 북한이 밝힌 비핵화의 개념이 2005년 9·19공동성명보다는 1992년 1월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칼린의 논점은 이랬다. “북한은 2013년 ‘국방위원회 대변인 중대 담화’에서도 비핵화가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라는 점만 담았다. 


하지만 정부 성명에는 처음으로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일 뿐 아니라 ‘김정은의 영도를 따라가는 당·군·민의 드팀없는 의지’라고 밝혔다. 김정은도 포함한 것이다.” 그는 첫 4가지 요구는 전술핵 철수와 같이 미국이 이미 충족시켰거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9·19공동성명 등에 이미 명시된 것으로 중요한 것은 5번째 요구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왜 전체 주한미군이 아닌, ‘핵무기 발사권을 가진 주한미군’을 철수 대상으로 한정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대신, ‘철수 선언’을 요구했는지에도 물음표를 달았다. 성명은 “이러한 안전 담보가 실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 역시 그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취할 것이며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에서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한미군 철수’만 크게 보이는 사람들에겐 별 의미 없는 제안이었다.


국내에서 이 성명의 특이함을 주목한 전문가는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60)이다. 그는 북한의 비핵화 대화 용의에 더해 칼린이 의문 제기에 그친 주한미군 철수 부분과 북한의 요구에 담긴 함의를 보다 정치하게 읽어냈다. 조 위원은 최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핵전략자산 전개와 관련한 주한미군의 철수 선언”인 만큼, 미국의 핵자산 전개 및 반입에 반대한 앞의 3항, 4항의 요구와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모든 핵전쟁연습’과 ‘핵장비 반입’을 강력히 반대한 것과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해석이다. 칼린과 마찬가지로 조 위원 역시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의 의미가 6자회담 9·19공동성명에 천명한 것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 3월10일자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 진단에서 “북한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한 지금, 13년 전에 발표된 9·19공동성명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은 비핵화의 등가교환물이 되기 어렵다”면서 진정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이 요구한)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 등 합리적 안보우려 해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지난 1일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육군 최전방 소초 주변에 갖가지 봄꽃이 피어 있다. 초소 너머 북측 지역이 어렴풋이 보인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최근 주한미군 철수를 둘러싼 담론이 다시 불거졌지만, 북한의 입장은 이미 1990년대부터 일관되게 통일 뒤에도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으로 확인된 사안이다.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는 1992년 1월22일 뉴욕에서의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아널드 캔터 국무부 정무차관에게 북·미 수교를 전제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김일성 주석의 의사를 전했다. 통일 뒤에도 주한미군의 위상·역할이 바뀌면 주둔해도 좋다는 말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중 김대중 대통령에게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오랜 요구였다. 최근 공개된 1987년 12월 김 주석의 ‘한반도 완충지역 설정 및 중립국 창설을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안’에도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가 핵심 요구로 포함됐다. 하지만 주한미군을 보는 북한의 생각이 바뀐 것은 중국이 동아시아의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것과 직접 관련돼 있다. 리언 시걸 뉴욕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프로젝트 국장(75)은 최근 경향신문 기고문에서 “김일성은 1988년 소련의 붕괴가 예상되자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피하기 위해 미·한·일과 화해를 추진했다”면서 “중국의 힘이 세질수록 북한의 이런 필요는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국가적 목표를 담아 1994년 제네바합의와 9·19공동성명 등에서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추진하는 일관된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다. 조 위원이 변화의 단초로 주목하는 북한의 7차 당대회 결정문을 보면 ‘중국’을 명시하지 않았을 뿐 중국으로 짐작되는 외부의 위협을 강조하는 대목이 두드러진다. 곳곳에서 ‘변화된 국제적 환경’과 ‘격변하는 정세’를 강조하고 있다.


■ 비핵화는 체제 유지하고, 경제 발전시키며, 중국 겨냥하는 '신의 한 수'?


1992년 북·미 수교 전제로 이미
“미군 철수 요구 않겠다” 뜻 전달
중국 패권 견제 ‘존치 유익’ 판단

2016년 정부 대변인 성명 통해선
핵사용권 쥔 미군 철수 선포 요구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구상 차원


결정문은 “우리 나라의 분렬에 관련 있는 나라들과 주변국들은 북남 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부추기지 말고 조선의 통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자신들에 대한 국제적인 압살책동을 중지하고 한반도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 앞에 저지른 과거 죄악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해야 하며, 조선의 통일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여기서 ‘주변국들’로 표시된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중국이 미국 주도 유엔 안보리 제재에 동참한 것은 오히려 표면적인 빌미로 보인다. 그보다는 중국이 흥할 때 한반도가 곤궁한 입장에 처했던 역사적 경험에서 나오는 경계로 풀이된다. 중국 주변 국가들은 대부분 황야의 무법자처럼 전횡을 휘두르는 중국의 압력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보호막’이 있는 한국과 일본, 호주, 태국 등도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중국의 권위주의적 영향력을 말하는 ‘샤프 파워(Sharp Power)’라는 신조어가 생겼겠는가. 냉전시기 중·소 간에서 균형외교를 펼쳤던 북한 입장에서 중국의 부상과, 그러한 중국에 교역의 90% 이상을 의존하는 구도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세임이 분명해 보인다. 더구나 지난해 11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를 통해 현대판 황제에 등극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 아닌가.


중국에 대한 경계는 이번 판문점선언에도 담겼다. 2007년 10·4 남북 정상 공동선언에서 종전선언 및 평화회담의 주체로 ‘3자~4자’를 명시한 데 이어 이번엔 종전선언의 주체(남·북·미)에서 중국을 아예 뺐다. 그 때문인지 2일 급거 방북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긴밀한 소통과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새삼 강조했다.


북한 변화의 또 다른 배경은 물론 돈 문제다. 취임과 동시에 “인민들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한 김정은 위원장이다. 지난해 당 중앙위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인민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강화하고 인민생활을 개선향상시키는 것을 ‘중심과업’으로 선포했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1주일 전인 지난 달 20일 중앙위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는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포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 노선을 발표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좁혀듦에 따라 인민경제 개선과 함께 1만5000~2만여명으로 추산되는 핵심 지배층 관리에 필요한 자금줄도 확보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세계의 시선이 여기, 한반도로 쏟아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과연 근본적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해나가고, 미국이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는 동시에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한다면, 파천황(破天荒)의 변화는 불가능한 게 아닐 것이다. 북·미는 과거 비슷한 기회를 몇 차례 놓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이번엔 “두고 볼 일(We will se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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