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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체감정년

칼럼/여적

by gino's 2013. 1. 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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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의 단편소설 ‘잉여인간’에서 비분강개파 채익준씨와 실의의 인간 천봉우씨는 중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치과의원 대합실에서 소일하는 것으로 하루를 메운다.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사회 어느 곳에서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잉여인간의 전형적인 일상이다. 손창섭이 인용한 로맹 롤랑의 글귀대로 “사람이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자기의 정해진 길을 가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해진 길’이 많은 경우 피곤한 여정이라는 점이다. 베이비부머들이 직장생활 끝에 맞는 정년도 전후 잉여인간의 삶 못지않게 황량하다.


4050세대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정년퇴직’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거의 반사적으로 ‘백지’ ‘백수’ ‘막막하다’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아침에 갈 곳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감을 던지는 화두가 정년이다. 인생이모작은 소수의 성공담일 뿐이다. 정년 이후는 많은 경우 목적지도 없이 기차역 대합실에서 묵새기는 잉여인간 신세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사소한 일에 비분강개하거나 실의에 빠지기 일쑤다. 물론 정년 이후를 앞당겨 걱정하는 것이 호사스러운 고민인지도 모른다.



퇴근길 어묵 하나 (출처: 경향DB)



엊그제 발표된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퇴직 연령은 48.8세였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고령자(65~69세) 고용률은 41.0%로 아이슬란드(46.7%)에 이어 조사대상 32개국 중에서 두번째로 높았다. 10명 중 4명이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이다. 일손을 놓는 한국인의 실질적 은퇴연령은 71세로 OECD 회원국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년 이후 인생 대합실에서 최소 20여년 동안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는 말이다. 


숙명적인 삶의 조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이 또한 정치적, 정책적 선택의 문제다. OECD 조사에서 고령층 고용률은 프랑스 5.3%, 독일 10.1%, 스웨덴 15.5%, 영국 19.6%, 미국 29.9%, 일본은 36.1%였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국가 주도의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진 곳일수록 노인 노동인구는 적은 경향을 보인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정년 이후의 삶을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두는 나라는 결코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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