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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한국도 변했다…이제 '브라보' 한미동맹으로" 이경렬 대사 인터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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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s 2025. 8. 2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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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식이 예정된 2007년 6월 30일. 주미 대사관 경제참사관이 잠적했다. 이른 새벽 휴대폰을 끄고 버지니아 쉐난도의 올드랙 산에 들어가 버린 것. 오전 10시 행사 시작 몇 시간 전 벌인 '일탈'이었다. 그 2년 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목, 주베트남 대사관에서 긴급 공수해 온 일꾼. 그는 그날, "FTA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생각에 공직 사퇴를 결심했다. 누구보다 협상 지원에 전념했던 그는 왜 자괴감에 빠졌을까? 흔히 "뺀질이" "영혼 없는 인간" "미국 앞잡이"로 불리는 '외무공무원'이 상식적인 눈높이의 시민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이경렬 전 주앙골라 대사가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올해 잇달아 펴낸 저서의 표지. 2025.8.21. 시민언론 민들레

이경렬(63) 전 주앙골라 대사. '창천(蒼天)'이라는 필명으로 왕성한 집필을 하고 있다. 올해 두 번째 책 <브라보 한미동맹(진인진, 2025)>을 이달 초 내놓았다.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라는 부제가 예사롭지 않다. 한미 관계의 실제와 이를 다루는 관료들의 가식과 위선, 한계를 파헤쳤다. 지난 3월 <명품외교의 길>을 펴내 "대한민국에 외교는 없다. 유사 외교 행위가 있을 뿐이다"라고 일갈한 지 다섯 달 만이다. 이번에도 직업외교관 33년 (1985~2018)의 경험과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견고한 논리를 펼쳤다. 

지난 14일 서울 공덕동 <시민언론 민들레> 사무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이후 여러 차례 교신으로 내용을 다듬었다. 통상적인 인터뷰와 다르게 진행됐다. 같은 시기, 같은 사안을 문 안에서 본 전직 공무원과 문 밖에서 본 동년배 저널리스트는 서로 할 말이 많았다. △ 미국의 변화, 한국의 변화. 브라보 한미동맹! △ 다시 노무현 시대? 노무현에서 출발해 노무현 넘어서기 △ '외무부' 개혁 제언 등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인물사진은 게재하지 않는다. "멀쩡한 얼굴을 왜?"라는 질문에 그는 "나중에 얘기하겠다"라고만 답했다. 

-먼저 가벼운 이야기부터. 그날, 행사 앞두고 왜 산에 올라갔나.

"FTA 협상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미 의회를 상대로 전문직 비자(H-1b) 확보 노력을 기울였다. 호주를 비롯한 국가들은 FTA에 포함했지만, 우리는 별도의 틀에서 다뤄야 했다. 프레시안이나 오마이뉴스 등 일부 언론의 FTA 비판은 대부분 맞는 얘기였다. 정부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공무원으로서 부끄러웠다."

-외교통상부가 뒤집혔을 것 같다.

"선배들의 만류로 끝내 사표는 내지 못했다. 나를 걱정해 준 측면도 있겠지만, 한미 FTA의 진상이 폭로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있지 않았나 싶다. 결국 키르기스스탄으로 전근 배치돼 대사관 창설 작업을 했다." (당시엔 통상교섭본부가 외교부에 있었다)

7월 29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치누크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호화로운 미군 기지다. 한국은 국민 혈세로 기지를 건설, 제공했다. 아직도 계속 지불하고 있다. 2025.7.29.  연합뉴스

-평범한 공무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올해 두 번째 저서다. <명품외교의 길>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지 얼마 안 돼 역저를 내놓았다.

"<명품외교의 길>은 2023년에 이미 써놓은 거다. 마땅한 출판사를 물색하느라 발행이 늦어졌다. 그 책이 총론이라면, <브라보 한미동맹>은 각론인 셈이다. 정부 수립 때부터 시작돼, 독재 시기를 거쳐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한 숭미의 밈(meme)과 이를 뒷받침하는 진(gene)을 도려내고 멋진 한미동맹의 비전을 제시하고 싶었다. 광복 80년째 사라지지 않은 돌연변이 유전자다."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와 최근의 관세협상을 보면서 새삼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책에서 "우리가 아닌, 미국이 긴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던데?

"최근 몇 가지 변화가 감지된다. 먼저 미국 쪽에서 상황을 악화시킬까 상당히 조심하는 것 같다. 얼마 전(8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국방부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설명한 적이 있다. 한국도 이를 충분히 인정해야 하고 미국도 숫자가 아니라 능력에 기초해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 여론이 '감축하려면 감축하라'고 쿨하게 나가니까 다음 날 "감축을 얘기한 적이 없다"라고 뺐다.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본다."

상황 변화 간파한 2008년 '버시바우 기밀 보고서'
"한국 제대로 존중하지 않으면 동맹 유지 어렵다"

-주한미군 감축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언론도 여전히 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오래됐다.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본국에 보낸 긴 전문(2008년 1월 8일 자)이 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보다 지속가능하고 전략적인 미-한 동맹 2020 비전(2020 VISION OF A MORE VIABLE AND STRATEGIC U.S.-ROK ALLIANCE)'이다. 노무현 정부가 끝나고 MB가 들어오는 시점인데 전문의 요점은 '한국이 옛날의 그 똘마니가 아니다. 한국이 성장했다는 걸 인정하고 제대로 존중하는 시각을 갖지 않으면 동맹이 오래가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노무현 정부 초기 (한국의 입장을) 한마디로 내쳤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게 맞는 얘기라는 걸 깨달았다는 증거다. MB가 들어와 '노무현이 한미 관계 다 망쳐놓았다'라면서 과거로 돌아가면서 빛이 바랜 보고서다."

정부가 2023년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상징. 시민언론 민들레

-한국이 중국을 겨냥한 제1도련선 안의 항공모함이라는 등 브런슨 사령관의 최근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구조조정 대상이 된 미 육군 처지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미국 국방부 내의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트럼프는 금전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다. 미군이 한국에 있는 덕분에 미국이 얻는 국가적 이익이 엄청나다는 걸 잘 모른다.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는 다르다. 지금도 우리 외교부와 국방부가 뭘 협상하는 것 같은데 심상치 않다. 최근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루비오 국무장관과 조현 장관은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전략적 중요성도 한층 높이는 방향으로 동맹을 현대화해 나가기로 했다.' (7월 31일 외교부 보도자료) '동맹의 현대화'라고 하지만 말장난이다. 바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말한다."

-'전략적 유연성'을 쉽게 풀어준다면.

"전략적 유연성이라고 해놓으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다. 무엇이 유연하며 왜 전략적인지 밝혀야 한다. 주한미군의 유연성이란 미군이 한국에의 '접근, 주둔, 영공 통과(ABO)'를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재명 신정부 들어와서 성숙한 한미 관계를 바라는 의견이 상당히 나오고 있다. 과거 조·중·동이 여론을 조성했다면 이제 유튜브 방송이나 <민들레>와 같은 시민언론에 한미 관계에 관한 굉장히 성숙된 의견이 많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된 것 같다. 조·중·동도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별로 얘기가 없다. 그게 먹히려면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위협이 먹혀야 하는 데 민도랄까, 우리의 지적 수준이 높아진 거 같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8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8.10. 연합뉴스

-브런슨 사령관은 지난 5월 15일 하와이 심포지엄에서 자신이 한미 연합사 사령관으로 "유사시 75만 명의 육, 해, 공군, 해병을 거느린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자기 밑에 75만 명이 있다는 말은 맥락이 있다. 2002년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처음 들고나온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당초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미 연합사가 역내 분쟁에 함께 간다는 구상이었다. 나중에 주한미군만 나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미국의 국익이 바로 우리의 국익'이라는 숭미 여론을 조성해 온 조선일보는 7월 26일 자 사설에서 주한미군이 역내 분쟁에 나갈 때 한국군도 따라가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았다. 국무부가 24일 한국 언론에 보냈다는 정체불명의 언론성명에서 '한국과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동맹의 현대화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면서 그렇게 썼다. '이재명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동맹은 본질적으로 흔들릴 것'이라면서 "우리 국민이 미국과 함께 중국에 맞서 싸울 의사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고 했다. 누군가의 사주로 간보기를 한 것 같다. 그런데 안 먹히는 분위기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거다."

(미 국무부가 특정 언론의 질문에 정리된 입장을 제공하는 경우는 있어도 '언론성명'을 한 신문에 제공하는 경우는 없다. 기자는 15일 국무부에 해당 '언론성명'의 공유를 요청했지만 전달받지 못했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도 7월 31일 자 칼럼에서 '일본은 미국과 함께 중국과 싸울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은 미지수'라고 적었다)

당초 한미 연합사, 대만 파견을 꿈꿨던 럼즈펠드
조선일보가 슬쩍 띄워 올린 '한미 대 중국 전쟁'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미·중이 격돌하면 세계 전쟁이다. 재작년인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중 전쟁 시뮬레이션 보고서에서 "누가 이겨도 '피로스의 승리'가 된다"고 했다. 미 해군은 세계 제해권을 잃고, 중국 공산당은 권력을 잃게 된다고 분석했다.

"대만 유사시, 미국이 이 얘기를 먼저 꺼낸 지 20년이 됐다. 아태전략이건, 인태전략이건 중국을 포위하려는 언어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건 현실성이 없다. 미국은 그걸 침소봉대해서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본다. 미국이 미래의 가정적인 상황을 두고 한국에 '그런 상황이 오면 미국을 돕는다고 미리 약속하라'는 압력을 가한다면 절대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주권국에 백지수표를 달라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계기에 미국에 "우리 의사에 반해 역내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나? 물론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을 침공한 전력이 있는 나라다. 해서 '나중에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그때 가서 협의하자.' 이게 노무현 정부가 분명히 해둔 지점이다."

미중 사이의 대만 이미지.

-미국이 중국과 분쟁을 벌이거나, 분쟁에 대비한다면 주한미군을 동원하려고 하지 않을까?

"한국군이나 한미 연합사는 물론 주한미군이 가는 것도 안 된다. 그러면 한국이 중국의 공격 목표가 된다. 예컨대 병력을 빼서 주일미군에 배속시키는 방식으로는 가능하다. 맞다. 미국은 우리의 친구다. 그런데 친구가 좋다고 지옥에 따라갈 수는 없지 않나. 미국은 이번에도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카드를 흔들며 위협할 거다. 수십 년 동안 특히 한국에 너무 잘 통한 수법이다. 이제는 단호하게 "노(No)"라고 해야 한다. 미군은 우리가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간다. 못 나간다. 미국도 한국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다고 본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4월 중순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유연성 확보를 지지한다는 정치적 성명을 발표(하도록)한다'는 실행 메모를 작성했다고 한다. 미국의 이러한 태세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나.

"한덕수 대행 체제 때 작성한 메모다. 지금은 아니라고 본다. 간을 보다가 물러선 것 같다. 물론 한국 내에서 공론화가 안 되고 우리가 가만히 있었으면, 만만히 보고 압력을 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월 26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싱크탱크 인사들도 한국 새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더라.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한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굳이 첨언했다. 한국이 안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이 비쳤다."

미국, 한미 정상회담보다 실무 선부터 팔 비틀수도
조현의 갑작스런 방미… 안보문제 의제 조정 요구?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유연성이 논의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건가. 

"미국은 (한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보고 논의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 과거처럼 실무선에서 팔을 비틀고 들어올 수도 있다. (미국은 외교, 국방 당국자들에게 '각서'를 먼저 받는 방식을 종종 취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안의 본질을 냉철하게 볼 줄 안다고 믿는다. 미국이 압력을 가할 수 있겠지만,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 이 대통령은 충분히 단호한 입장을 정할 수 있을 거다. 엊그제(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 회의를 보니 되레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만에 주한미군이 개입하는 형태가 되면 절대로 안 되며,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돼서도 안 된다고 먼저 당부하더라."

(조현 외교부 장관은 갑작스레 21일 미국 방문에 나섰다. 안보 의제 조율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07년 8월 10일 한미 FTA를 반대해온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이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07.8.10. 연합뉴스 오는 25일 미국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연합뉴스

-정상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나올까.

"기본적으로 경제, 통상, 관세협상, 조선 협력 문제가 나오지 않겠나. 조현 장관은 '기술동맹'을 세일즈하던데 실현되면 좋은 거다. 미국은 한국에 한 번도 제대로 된 기술을 준 적이 없다. 한미 원자력 협정 협상에 참여해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도 못 하게 하더라. 우주기술도 하도 안 주니까 우리가 러시아와 하지 않았나. 일단 정상 간 첫 만남이니까 크게 크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시 올드랙 산으로 돌아가 보자. 이 대사가 "대국민 사기극이었다"고 한 한미 FTA도 관세협상으로 사실상 사문화가 됐다.

"그 역시 숭미의 소산이었다. 책에 '암컷에 먹히는 숫사마귀의 슬픔'이란 제목으로 상세한 이유를 담았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5.66% 오르고, 35만 명의 고용이 창출된다고 했던 한국 경제연구기관들의 합동보고서 자체가 사기였다. 정직하게 일반균형연산(CGE) 모델을 돌렸으면 1%도 안 나오는 것이었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나 의약품 특허-허가 연계 같은 독소조항만 문제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FTA 여러 조항이 우리의 주권을 제약할 빌미가 됐다는 점이다. 어차피 관세협상으로 사문화됐으니 이번 기회에 아예 폐기하는 게 낫다. 필요하면 보다 균형잡힌 새 협정을 맺으면 될 일이다."

2007년 8월 10일 한미 FTA를 반대해온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이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07.8.10.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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