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7차 핵실험. 단일 사안으로 외교안보 당국이 2년 넘게 '예측 게임'을 하는 사안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계기가 있을 때마다 반복됐다. 가능성 차원에서 내놓은 예측이 빗나갈 때마다 별다른 설명도 없었다. 더 궁금한 건 정부의 대책이다. 심각한 안보 불안 요소에 대해 예측만 남발할 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거푸 빗나간 예측
국가정보원은 26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이 최근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9.13.)한 건 대외적으로 미국을 의식하는 한편, 대내적으로 경제상황이 안 좋은 상황에서 주민들의 자신감을 고취시키려는 행위로 판단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이 미국을 전후해 7차 핵실험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대선 이전에도 가능성이 있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인공위성 발사 등의 다양한 도발 수단이 있어 대선 이후일 것"이라는 말이다.
앞서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도 지난 23일 "북한이 미국 대선 시점에 7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TV에 출연해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제조 시설을 공개한 것도 미국 대선 국면에 핵 위협을 부각함으로써 대내외 관심을 끌려는 것"이라고 비슷한 분석을 했었다. 매튜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이 농축우라늄 시설을 공개한 13일 정례브리핑에서 7차 핵실험 임박설에 대한 질문에 "예단하지 않겠다"고 말해 대조됐다.
국정원의 7차 핵실험 예측은 처음이 아니다. 작년 12월 28일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측근들에게 "내년 초 남조선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첩보를 전하면서 7차 핵실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4월 총선 전 북한 도발'이라는 범정부 차원 홍보의 일환이었다. 11월 23일에도 정보위에서 "연내 핵실험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2024년이 되면 김정은의 결심에 따라 언제든지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2022년 12월 22일엔 성남시 판교에 있는 국가사이버안보협력센터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북한은 핵실험 직후 국제사회 제재에 대한 반발로 사이버 공격을 하는 패턴을 보였다"라면서 내년(2023) 중 7차 핵실험을 하고 이후 사이버 공격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10월 26일 국정감사에선 북한이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11월 7일 이전에 7차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9월 28일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10월 16일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이후부터 미국 중간선거일 사이에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한달 넘게 유지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0월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도발이 빈번해지는 만큼 24시간 대비 체제"라고 강조했다.
"24시간 대비" 홍보도
국정원이 특정 기간까지 설정해 예측했지만, 핵실험은 없었다.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국정원이 제시한 근거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3번 갱도가 완성됐다는 것이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연구원은 9월 30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위성 사진에서 3번 갱도 주변에 차량과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아 핵실험 임박 조짐은 없다"고 말해 국정원과 상반되는 분석을 내놓았다.
국정원의 7차 핵실험 설은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취임(5.10.) 초부터 제기됐다. 국정원은 5월 19일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핵실험 준비는 다 끝났고, 타이밍만 보고 있다"고 보고했다. 25일 정보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동향' 현안 보고에선 북한이 핵실험 준비의 일환인 기폭 장치 실험을 했음을 전하면서 "기폭 장치가 7차 핵실험 징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5.20.~22)이 계기로 지목됐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은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그렇다면 예상되는 안보 악재에 대비해 정부가 취하고 있는 조치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없다. 2022년 11월 7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북이 언제 핵실험을 해도 정부는 철저한 대응 조치를 하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대응 조치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직접적인 대화는 안 되는 상황이지만 다른 방법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도록 압박하고 설득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분명치 않다.
북한 7차 핵실험을 압박할 수단을 갖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한중 관계는 윤석열 정부 들어 외교적, 경제적으로 망가진 상태다. 지난 5월 27일 무려 53개월 만에 한중일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렸지만, 한중 관계는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중국은 되레 윤석열 정부 들어 강화되고 있는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을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전략핵잠함(SSBN)과 전략 폭격기의 정기적 기항, 기착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러중 간 연합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한러 관계는 윤석열 정부가 '서방의 일원'로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는 물론, 독자적 제재를 확대한 탓에 수교 이후 최악이다. 러시아는 지난 6월 19일 북한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2017.6.3.)까지만 해도 예외 없이 유엔 안보리가 소집돼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결의를 채택하는 수순을 밟았다.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안보리는 어떠한 대북 결의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상수가 된 7차 핵실험
한은 핵실험 준비를 마쳤고, 추가 핵실험을 해야 할 기술적, 전략적 수요도 있다. 특히 북한이 공개한 농축우라늄 시설과 관련, "한국과 일본을 겨냥하는 전술 핵무기를 확대, 개발하겠다는 신호"라는 분석(시그프리드 헤커, 로버트 칼린)도 제기된다. 여섯 차례의 핵실험 중 3차(2013.2.12.)와 5차(2016.9.9.) 두 번만 전술 핵무기 실험을 했기 때문에 탄도미사일에 적재할 핵탄두의 성능을 추가로 개선할 기술적 필요도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설득력 있게 제기되는 것은 중국의 반발로 인한 외교적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북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역시 규모가 컸던 2017년 6차 핵실험 뒤 중국의 강한 반발을 보였다면서 중국 입장이 여전히 북한에 부담이 될 거라고 짚었다. 국정원이 2022년 7차 핵실험 예상 시기를 '중국 당대회 이후'로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정원은 26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7차 핵실험설만 내놓은 게 아니다. 북중 관계가 상당히 어려운 상태라고 진단했다.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박선원 의원에 따르면 최근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외화벌이 일꾼들에 대한 단속, 교체 과정에서 신경전까지 벌였다. 북중 간 긴장이 7차 핵실험 억제 효과가 될지, 촉진 효과가 될지 미지수다.
북한이 실제 핵실험을 하더라도 한국은 맥없이 규탄하고, 비난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다. "한미 동맹이 철통같은 방위 태세를 갖출 것"이라는 게 익히 예상되는 정부 반응이다.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예상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8차 핵실험설이 나올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2년 여 동안 되풀이 유포해 온 7차 핵실험설이 이번엔 어떻게 귀결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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