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인사이드 월드/ 밀로셰비치 만이 '악마'인가

세계 읽기/인사이드 월드

by gino's 2012. 2. 25. 00:56

본문


 
[경향신문]|2001-04-05|06면 |45판 |국제·외신 |컬럼,논단 |1076자
그는 '악마'다. 13년 동안 '철권'을 휘두른 독재자였으며, 피에 굶주린 살인광이었다. 보스니아에서는 이슬람계와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을 집단 학살하도록 부추겼고, 코소보에서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무참하게 죽였다. 서방언론이 묘사하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의 인물평이다. 단골로 비유되는 역사 속 인물은 아돌프 히틀러다. 인종청소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맥락에서 비교된다. 프랑스의 르몽드도 자살자가 많았던 그의 가족력까지 들먹이며, 선천적으로 음산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그를 철저하게 악마화하는 바탕에는 인도주의라는 썩 괜찮은 명분이 있다. 그러나 그가 인종청소의 주범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물론 소수에 불과하지만 다른 평가도 있다. "그는 적어도 3번이나 선거를 통해 집권했으며, 세르비아 헌법을 준수해왔다. 그가 독재자라며 어떻게 그가 이끄는 정당이 의회내 소수당일 수 있으며, 반대여론이 들끓을 수 있겠는가".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 지식인 레지스 드브레가 코소보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99년 5월 펼친 바 있는 옹호론이다.

밀로셰비치는 탈냉전의 출구에서 발생한 두개의 국제전으로 유명인사가 됐다. 공정하게 보자면 그는 보스니아 전쟁을 부추기고 인종청소를 사주했으며, 이를 통해 정치적 야욕을 달성한 사람 중의 한명이다. 프란요 투즈만 전 크로아티아 대통령과 보스니아 이슬람계 지도자였던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도 같은 면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투즈만 전 대통령은 전쟁 뒤에도 독재권력을 만끽하다가 사망했으며, 이제트베고비치는 옛 지도자로 여전히 건재하다. 밀로셰비치 자신도 코소보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국제전범재판소에 기소되지 않았었다. 오히려 보스니아 전쟁을 끝낸 데이턴 평화협정의 공로자로 평가받기도 했다.

코소보 전쟁은 나토의 개입 시점부터 일국의 주권을 침해한 국제법 위반이었으며, 이후 87일간 계속된 공습은 50억달러의 재산손실과 적지 않은 민간인 피해를 남겼다. 여러 나라, 여러 지도자가 개입된 비극의 원흉으로 밀로셰비치만 지목하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쁜 놈=밀로셰비치'라면, 두차례의 국제전에서 '좋은 놈'은 누구였을까.

김진호 기자jh@kyunghyang.com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