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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 명 사망, 대선 계기 '약간' 주목받은 민주콩고내전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12. 2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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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은 전쟁 중에 태어났다. 지금도 전쟁 중에 살고 있다."

외세가 개입한 내전 탓에 600만 명이 죽고, 690만 명이 주변국 난민촌에 흩어졌다. 지금도 계속되는 분쟁이다. 그럼에도 세계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해왔다. 국제정치도, 세계 언론도 그다지 윤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분쟁의 연료는 인종과 종교만이 아니다. 탐욕의 정치가 개입될 때 파괴력이 커진다. 그러나 이권이 지역에 머물면 관심이 제한된다. 콩고민주공화국(DRC) 동부에서 27년째 진행 중인 세계사적 참극이 외면받아 온 연유다. DRC 동부의 중심 도시는 고마와 사케. 첫 문장은 뉴욕타임스가 지난 17일 자 현지 르포기사에서 소개한 난민촌 주민의 말이다.

18일 재선에 나선 펠릭스 치세케디 민주콩고 대통령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수도 킨샤사에서 열린 유세 도중 불쇼를 하고 있다. 2023.12.18. AFP 연합뉴스

벨기에의 루뭄바 살해가 촉발한 비극

지난 1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으로 반짝 조명을 받았던 민주콩고의 분쟁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약간' 받고 있다. 오는 20일 치러지는 대선이 계기가 됐다. 2018년 대선에서 당선된 펠릭스 치세케디 대통령이 재선에 나섰지만, 여전히 내전 중인 동부 지방의 수백만 유권자는 투표에 참여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풍부한 지하자원은 풍요의 밑천이 아니라, 저주의 원천이 됐다. 120여 개 무장세력의 돈줄이자 끝없는 분쟁의 촉매제 역할을 해 왔다. 벨기에 식민지였던 DRC의 공식어는 불어이고, 1억 1000만 인구의 95%가 기독교인이다.

오랜만에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고 해도 가자지구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집중 조명을 받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군이 어린이와 여성 민간인을 겨냥한 '도륙 작전'을 벌이고, 러시아군의 3중, 4중 방어선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피를 흘리는 것만큼 관심을 끌어모으지 않는다. 분쟁을 주목하는 세계의 양심도 공정하지 않다. 미국 국민 3명 당 1명 꼴로 관심을 보였던 2007년 다르푸르 분쟁의 사망자는 20만 명.  그즈음 DRC 사망자는 500만 명을 넘었다. 한해를 마감하는 세밑, 세계사적 분쟁과 그보다 더 질긴 세계의 무관심을 돌아본다.

1960년 5월 사상 첫 민주적 총선에서 독립운동 지도자 파트리스 루뭄바가 총리가 취임했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다. 루뭄바 총리가 임명한 군사령관 모부투 대령이 미국과 벨기에의 지지를 받아 쿠데타에 성공했다. 루뭄바는 이듬해 벨기에 측에 넘겨져 처형됐다. 벨기에 의회는 40년 뒤 루뭄바 살해를 공식 사과했지만, 그의 죽음은 물론 DRC의 혼란도 되돌리지 못했다. 콩고가 냉전과 열전의 무대가 된 건 이즈음부터다.

모부투의 친미반공 독재 32년

DRC는 미국·벨기에가 지원한 모부투 군사정부와 소련·쿠바가 도운 심바스 반군 간에 전쟁터가 됐다. 1965년 사회주의 반란이 진압된 이후 32년 동안 미국을 등에 업은 모부투 세세 세코 정권이 독재의 긴 연대기를 열었다. 모부투는 리처드 닉슨과 로널드 레이건 등 미국 대통령들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자 찬밥이 됐다. 안팎에서 민주개혁 바람이 일었고 1997년 해외로 탈출해야 했다.

장 피에르 라크루아 유엔 평화임무 담당 사무차장이 방문한 민주콩고 동부 이투리 주의 수도 부니아 인근의 난민촌을 아이들. 2022.2.22. UN Photo/Eskinder Debebe

한반도 면적의 10배(234만 5409㎢) 넓이의 DRC는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다. 모부투를 축출한 제1차 콩고 전쟁(1996~1997)에는 로랑 카빌라 반군을 비롯한 내부 세력뿐 아니라 인근 우간다와 르완다 군대도 참전했다. 카빌라는 수도 킨샤사에 입성, 국명을 자이레에서 DRC로 바꾸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우간다와 르완다 군은 카빌라의 철군 요청에도 콩고 동부지역에 남아 또 다른 분쟁의 불씨가 됐다. 정부군뿐 아니라, '민주'와 '해방'을 내세운 콩고인 무장세력을 만들어 지원했다.

우간다와 르완다 정부군 및 무장세력들이 DRC 정부군을 공격하면서 제2차 콩고전쟁(1998~2003)이 발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낸 전쟁이자, 아직도 진행 중인 분쟁이다. 국제구조위원회(IRC)는 2007년 4월 현재 제2차 콩고전쟁에서만 540만 명이 숨지고, 200만 명이 인근 국가 난민캠프로 옮겨졌다고 집계했다. 매달 4만 5000명의 주민이 희생됐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2010년 휴먼라이츠워치의 추계를 인용, 르완다로 돌아간 후투족 병사 1명당 평균 7명의 여성을 강간했고, 900명의 주민을 난민으로 전락시켰다고 전했다. 미국 공중보건저널은 2006년과 2007년에 걸친 12개월 동안 여성 40만 명이 성폭행의 피해자가 됐다고 전했다. 이후 계속된 분쟁으로 1998년 이후 사망자는 600만 명이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2차 콩고전쟁에는 아프리카 13개국이 DRC 정부 지지(10개국) △광범위한 무력 지원(앙골라·나미비아·짐바브웨) △부분적인 무력 지원(차드·수단·중앙아프리카공화국) △병참 지원(리비아) △정치적 지원(남아공·잠비아·탄자니아 △반군 지지(3개국, 우간다·르완다·브룬디)에 가담해 '아프리카 대전쟁'으로 불린다.

민주콩고 동부 카탕가 국립공원 지역에 주둔하는 유엔 평화유지군 병사 앞에 아이들이 몰려 있다. 2007.3.1. UN Photo/Myriam Asmani

아프리카 대전쟁

서구 열강이 멋대로 그은 국경선은 비극의 전염 경로가 됐다. 후투족이 투치족 주민 80만 명을 학살한 르완다 내전의 불길이 콩고 동부로 번졌다. 처음 DRC에 들어온 르완다군은 후투족이었다. 르완다 내전이 벌어지자, 콩고 동부의 난민촌을 근거지로 정권 탈환에 나섰다. 모부투 정부군과 연합해 DRC 내 투치족 주민을 학살했다. 르완다에 투치족의 폴 카가메 정부가 들어서자, 역으로 DRC 내 후투족을 겨냥했다. 우간다가 콩고 군벌을 동원해 만든 콩고해방운동 군과 르완다계 무장세력은 분쟁의 주요 축이 됐다. 2001년 로랑 카빌라가 살해된 뒤 등극한 아들 조셉 카빌라는 다국적 평화회담을 제안했다.

2003년 르완다계 군벌을 제외한 외국군대가 철수하면서 2006년 다당제 선거가 치러졌지만, 선거 결과를 두고 다시 충돌했다. 르완다계 군벌은 2012년 '3월 26일 운동(M23)'을 결성, DRC 동부에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2차 콩고전쟁은 공식적으로 2003년 끝났지만, 유혈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부 이투리 주에서는 부족과 목축 부족 간의 분쟁이 간헐적으로 벌어졌고, 탄자니아와 르완다 접경지인 동부 북 키부주와 남 키부주에서도 분쟁이 계속됐다. 14만 4000명의 정부군과 1만 8000명의 유엔 평화유지군은 평화의 파수꾼이 되지 못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치세케디 정부는 한때 반군이었던 와잘렌도(애국자) 군벌과 1000명 정도의 루마니아 용병을 고마-사케 지역에 배치해 M23 군에 대처할 전력을 강화했다.

유독 동부지역의 분쟁이 더 심한 까닭 역시 지하자원 때문이다. 2009년 아프리카 비즈니스 매거진이 집계한 DRC 지하자원의 가치는 24조 달러. 세계 코발트 생산량의 3분의 1과 다이아몬드 매장량의 30%, 동 매장량의 10%가 묻혀 있다. 특히 스마트폰 과 전기자동차의 소재인 콜탄은 세계 생산량의 70%를 공급한다.

빈토우 케이타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겸 민주콩고 안정화 임무 책임자가 11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보고 하고 있다. 2023.12.13. UN Photo/Eskinder Debebe

세계 콜탄 70% 공급, '피 묻은 휴대폰'

'피 묻은 다이아몬드' 반대와 마찬가지로 '피 묻은 휴대폰' 불매 운동이 벌어졌지만, DRC 산 콜탄의 수입 금지를 촉구하는 노력은 별로 먹히지 않고 있다. 구조적인 부패사슬로 인해 광물수입의 상당 부분은 실권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DRC는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22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180개국 가운데 166위(30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2018년 치러진 대선에서 조셉 카빌라가 패배하고, 치세케디가 당선됐다. 그러나 카빌라파가 치세케디 정권의 주요 장관직과 입법·사법부를 장악했다. 부정선거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카빌라가 애초 2016년에 예정됐던 대선 투표일을 2년 여 미루는 과정에 다시 대규모 시위와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치세케디는 2021년 4월에나 카빌라파를 몰아내고 정부를 장악했다. 그사이 주민들은 에볼라와 홍역, 코로나19 대확산에 시달렸다.

빈토우 케이타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는 지난 11일 안보리 회의에서 "투표에 필요한 장비와 시설, 재정, 안전이 모두 열악한 상황"이라면서 그러나 여성 2명을 포함해 26명의 후보가 등록한 것은 국가통합의 실질적인 신호"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선거인 명부가 법정 기한인 지난 5일을 넘겨 야당 및 시민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다고 전했다. M23의 준동 탓에 10월 이후 발생한 난민만 50만 명에 달하는 등 혼란도 계속된다. 특히 M23 통제 지역의 유권자 150만 명이 투표에 참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돼 선거의 공정성이 벌써부터 도마 위에 올랐다. 전체 유권자는 4400만 명.

펠릭스 치세케디 민주콩고공화국 대통령(오른쪽)이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열린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2023.5.26. AP 연합뉴스

중국과 '포괄적 전략 협력국'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일부 미국 언론이 관심 두는 다른 이유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오랜만에 DRC 분쟁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지난 11일 DRC와 르완다 정부의 지지를 받아 72시간 휴전안을 발표했다. DRC 및 르완다 정부는 휴전안에 대해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은 정보력과 외교력을 동원해 무장세력의 휴전안 준수를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가자지구와 우크라 전쟁에서조차 제 역할 못 하는 미국이 '잊힌 분쟁'에 왜 갑자기 개입할까. 글로벌 사우스(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개도국)를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월 26일 치세케디를 베이징에 초청, 기존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포괄적 전략 협력관계로 격상했다. 중국은 최근 몇 년 동안 DRC의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투자국이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DRC의 산업전략지지, 에너지·광업·농업·인프라·제조업 부문 협력 강화 및 교육과 보건 협력을 다짐했다. 국제사회 헤게모니 추구와 힘의 정치, 내정 간섭 반대에도 공감했다.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접근할 때 필수적으로 따르는 조건이다. 치세케디는 대만 통일을 추구하는 두 개의 백 년 전략의 성공을 기원했다. DRC 정부군이 최근 M23 군과의 교전에서 성과를 내는 무인기도 중국제다.

5년 만의 DRC 대선은 분쟁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는 희미한 기대를 낳는다. 20여 년 동안 주둔했던 유엔 평화유지군과 동아프리카 지역군은 DRC 정부의 요구로 이달 말 떠난다. 아슬아슬한 평화가 대선 이후에도 자리를 잡을지는 미지수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새롭게 부각되는 '잊힌 전쟁'이 평화의 계기를 마련하게 될지 주목된다. DRC는 인접한 옛 프랑스 식민지, 콩고공화국(RotC)과 다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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