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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국에서 책임론 대두…잼버리 후폭풍도 클 듯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8. 1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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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에 거주하는 영국 소녀 가브리엘라(16)는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참가 준비를 18개월 전에 시작했다. 빵과 케이크를 구워 팔고, 영어 강습을 해 돈을 모았다. 영국 스카우트 협회가 기금 마련을 위해 연 행사장에서 음식 서빙도 했다. 틈틈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도 공부했다.

4500여 명의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은 1인당 평균 3500파운드(588만 원)을 아르바이트와 기부금으로 마련했다. 17세 해리 헵든은 18개월 동안 3000파운드를 모았고, 웨일스 출신 이에스틴 세이리올(15)은 2500파운드를 모았다. 리버풀에서 온 소년은 자신의 17세 생일을 잼버리 대회 기간에 맞았다. 인디펜던트와 BBC 등 영국 언론이 전한 참가자들의 이야기다. 14~18세 청소년들에게 4년에 한 번 열리는 잼버리는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꿈의 무대였어야 했다.

야영장에서 각국 청소년과 어울려 활동을 해야할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참가 대원들이 8일 저녁 서울의 한 지하철 역에서 목격됐다. 2023.8.8. 민병선 에디터

일생의 꿈이 악몽으로

엄청난 에너지와 습기를 품고 북상하는 건 태풍 카눈뿐이 아니다.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과 학부모, 자원봉사자, 지도자들의 분노도 들끓고 있다. 1차적으로 부실이 예견된 잼버리 대회에 참가를 강행한 각국 스카우트 연맹을 조준하고 있지만, 대회 조직위원회와 한국 정부를 2차 타겟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더 텔레그래프는 아이들을 '난장판(shambolic) 잼버리'에 보낸 매트 하이드 영국 스카우트 대표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8일 전했다. 학부모와 자원봉사자들의 불만은 왜 시작 전부터 부실이 예상된 잼버리에 참가했느냐는 것이다. 하이드 대표는 자신이 준비 단계부터는 물론 현지에 도착해서도 조직위에 여러 차례 우려를 전달했었지만, 마지막까지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그중 한 가지는 종교 또는 건강상의 이유로 식단을 조절해야 하는 참가자들을 위한 식사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선 이미 대회 전부터 새만금 간척지가 홍수에 약하고 폭염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 스카보러 출신 자원봉사자 그래미 영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모두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뒤 대체 40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왜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보냈는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회 몇 주, 몇 달 전부터 선발대를 보냈던 영국 스카우트 연맹은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가장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결정은 아예 불참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스카우트 지도자들은 단 하룻밤을 야영해도 위험 분석을 해야 한다면서 "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영국 대표단이 사전 왜 위험 분석과 야영징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나. 슬프게도 그 책임은 매트, 당신이 져야 한다"고 단언했다.

영국 스카우트 연맹 매트 하이드 대표가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에서 대회 조직위에 강한 실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UK 스카우트 누리집

"하룻밤을 자도 야영지 위험평가를 하건만…"

또 다른 자원봉사자 스티븐 존 에반스는 "연맹을 신뢰한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안전장치가 필요했지만, 실패와 실망만 보았다"고 격분했다. 스튜어트 데이비드는 "무엇보다 야영장이 적절한지 확인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미 작년 10월 한국 국회의 연례 국정조사에서 2023 잼버리 대회가 거대한 실패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었고, 10개월 뒤 현실이 됐다고 짚었다. 일정보다 늦게 진행된 준비작업과 홍수에 취약한 간척지에 필수적인 배수시설 및 폭염과 습기 등이 이미 문제로 지적됐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 스카우트 연맹이 새만금 도착 전인 7월 31일 학부모들에게 보낸 메일은 "현장 상황이 우리가 예상한 것처럼 준비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천 명의 10대 청소년들은 열사병을 비롯한 질환에 쓰러졌고, 텐트를 쳤던 '늪지대'에는 모기가 들끓었다. 위생과 의료시설은 물론 식사도 고통스러울 만큼 부족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최첨단 기술을 갖춘 나라이기에 2017년 잼버리 대회국으로 지정됐을 때 기대를 모았었다. 더구나 1991년 세계 잼버리를 치른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난장판 대회가 됐다.

신문은 전라북도는 지난 6월 배수시설이 대회 시작 전에 완성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무슨 작업을 했는지 모를 일이라며 대회 1주일 전 전라북도에 500㎜의 비가 쏟아져 썩은 물이 웅덩이를 이뤘고 더위와 습기 속에 모기가 창궐해 조직위는 결국 살충제를 살포해야 했다. 간이 샤워장과 화장실은 고작 70명이 관리했다. 결국 2일 하루에만 400명이 가료를 받아야 했고, 3일 900명, 4일 1400명으로 늘었다. 영국 대표단이 이날 조기 철수를 결정한 이유다.

전남 순천시 서면 운평리 도로에서 9일 오후 새만금 잼버리에 참가했다가 조기 철수한 스위스 대원 38명이 타고 있던 관광버스가 시내버스와 충돌해 잼버리 대원 3명과 버스 승객 5명이 경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다. 2023. 전남소방본부 연합뉴스

"개선 약속 안 지켜, 조직위에 실망"

하이드 총재는 책임을 조직위에 돌렸다. 그는 몇차례 문제를 제기해 조직위로부터 식사조절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식단과 그늘막의 추가 설치, 화장실 개선, 의료시설 확충을 갖추겠다는 약속을 받았었다고 전했다. 전북 지역의 호우 탓에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식단은 준비되지 않았고, 위생 상황은 더 악화됐으며, 추가 그늘막은 없었고, 의료시설은 인력이 부족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는 6일 성명을 통해 우리가 잼버리 일정을 단축하고 서울로 옮긴 4가지 이유였다고 밝혔다. 그는 동영상 메시지에서 "조직위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대표단을 보낸 영국 스카우트 연맹은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기도 하다. 하이드 대표는 가디언에 서울 일원에 숙소를 확보하느라 100만 파운드(16억 819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영국연맹은 향후 5년 동안 활동에 지장을 받게 됐다. 영국연맹은 아직 주최 측인 한국에 클레임(피해보상요구)을 제기하지 않고 있지만,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손해를 고스란히 감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9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태권도 체험을 하고 있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참가 대원들. 이날 오전 일일브리핑을 돌연 취소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인사를 한 뒤 대원들 사이(오른쪽 위)에 앉아 있다. 2023.8.9. 연합뉴스

영국에 이어 새만금 야영장을 떠난 미국 스카우트 측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연맹은 지난 6일 조기 철수 전 학부모 전원과 화상회의를 갖고 폭염과 태풍 북상, 부실한 식사와 의료 대응, 화장실 및 샤워실의 비위생적 환경 등 7가지 이유를 들었다. 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를 한 학부모는 "참가비만 6100만 달러(약 800만 원)가 들었다면서 부모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환불 요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자칫 대규모 소송이 제기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연맹의 희한한 침묵

희한한 것은 스카우트운동 세계기구(WOSM)과 각국 스카우트 연맹이 몇 차례 성명과 안내를 통해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파행을 지적하고 있지만, 정작 주관단체인 한국 스카우트연맹은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9일 연맹 누리집의 소통 게시판에는 '잼버리 점심이 빵?' '한국스카우트 중앙본부는 무얼하고 있나' '잼버리 사태에 대해' '잼버리 일정 개선 촉구' 등의 질문과 건의가 올라왔지만 연맹 측은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새만금 잼버리 주무 장관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8일 새만금 잼버리의 조기 철수 사태가 "한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해 소나기 비난을 받았다. 이 때문인지 당초 9일부터 서울의 임시 프레스센터에서 예정됐던 김 장관의 일일 브리핑은 취소됐다. 여가부는 취소 이유에 대해 "파악된 것이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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