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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대통령실 도청 의혹 자체가 "명백한 거짓"이라는 정부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4. 1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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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실 최고위 당국자들의 대화가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에 노출됐음에도 대통령실은 11일에도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국민의 알권리에 응답하기는커녕 미국 행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급급했다. 정확한 대변도 아니었다.

마이클 커비 미국 국가안보실 전략소통관이 10일 백악관 제임스 브래들리 브리핑룸에서 누출 문건과 관련한 언론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4.10. EPA 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이날 '미 정부의 도감청 의혹'과 관련해 이른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첫 문장에서부터 사안을 축소, 왜곡하려는 의도가 뚜렷했다. 입장문에 따르면 "양국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 그러나 1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 국무부 브리핑을 아무리 뒤져봐도 없는 내용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소한 몇몇 경우에(at least in some cases)' 온라인에 유포됐던 정보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원정보에서 변형됐다(altered from original source)'고 밝혔다. 현재까지 100여 건에 달하는 누출 정보문건 중 일부가 변형됐다는 말이 어떻게 '상당수 위조'로 탈바꿈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미국은 국방부 장관이 외국 국방부 장관과 통화를 하면 홈페이지에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한다. 그러나 기밀문건 누출 사건이 불거진 지난 주 이후 홈페이지에 게시한 것은 이스라엘 국방 장관(8일), 브라질 국방 장관(6일)과 통화내용뿐이었다.

미국은 변형된 것이 거짓정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위조'는 '어떤 물건을 속일 목적으로 꾸며 진짜처럼 만듦'이라는 뜻이다. '변형됐다'는 미국측 발표와 뉘앙스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성격 자체가 다른 말이다. 크리스 미거 국방부 공보담당 차관보 역시 사진화된 정보문건의 "일부 이미지가 변형됐다(Some of these images appear to have been altered)"라고 말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도 이날 인천공항 약식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라는 평가에 양국의 견해가 일치했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에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을 전달할 것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할 게 없다. 누군가 위조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거짓 정보'라는 전제하에 미국에 전달할 입장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수석비서관회의 발언 등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4.10. 연합뉴스

미거 차관보는 "누출된 정보들이 고도의 기밀이고 민감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라면서 "그렇기에 구체적인 언급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누출된 정보들은 (미 행정부 내)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업무와 관련해 사용한 것들"이라고 확인했다. 미 행정부는 누출된 정보의 상당수가 특급비밀이기에 누출 경로 및 누출 범위, 미국 국가안보에 입힐 타격 및 대응방안을 놓고 국방부를 주무부처로 매일 회의를 한 뒤 지난 7일부터 매일 국방부 장관에 직접 보고하고 있다. 기밀누출의 책임자 색출 및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법무부가 이를 형사사건으로 분류,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대통령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고 공표했다. 도청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터무니없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도청 자체가 되지 않았다면 대체 무엇을, 왜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사안을 축소,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안 자체를 부인하는 대통령실의 입장문이야말로 ‘가짜뉴스’이자 '자해행위'이고 '국익침해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보이지 않는 오만한 입장문이 아닐 수 없다.

정보전쟁엔 국경이 없다?

대통령실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입장'을 국민이 믿기를 바란다면, '누출 정보의 상당수'가 조작된 것이라는 말이 담긴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이종섭 국방장관의 통화 내용을 공개해야 마땅할 것이다. '특급 비밀(TS)'로 표시된 지난 3월 1일 대화록에 나온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 임기훈 국방비서관을 국회 청문회라도 출석시켜 진실을 공개할 일이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입수한 문제의 누출 문건. 앞부분에 미국 정보기관이 사용하는 약호가 있으며 마지막에 문건 일련번호도 있다. 2023.4.10. 시민언론 민들레

더욱 가관인 것은 대통령실 입장문에 뜬금없이 삽입된 "'정보 전쟁'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마치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청이 일상적인 행동이라는 인상을 준다. 어느 나라건, 그게 동맹이건, 적국이건 '정보전쟁'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청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뉘앙스가 아니라면 대체 이 말로 무슨 뜻을 전하려 한 것일까. 동맹국 지도자의 사무실에서 이뤄진 대화가 미측 정보문건에 고스란히 담겼는데 정보전쟁에 국경이 없다는 말을 내놓는 사고의 경로가 궁금하다. 104년 전 일제의 침략이 "우리가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과거"라는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의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그야말로 엉뚱한 '내 탓이오' 사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한국에 무엇을 설명했나

국무부 브리핑에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실 도청 파문 및 윤 대통령의 임박한 방미에 미칠 영향과 관련한 언론의 질문이 있었다. 베단트 파텔 부대변인은 "누출 문건에 관계된 국가의 고위층(at high levels)을 상대로 미국이 정보보호 약속을 확인시키는 한편, 안보 파트너십의 충실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생뚱맞은 답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도 "한국에 대한 우리의 (방위)확약은 강철같다"는 답변 아닌, 답변을 내놓았다. 우방 및 동맹국을 상대로 한미 행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은 지난 주말 시작됐으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방부 브리핑에서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우방 및 동맹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엿보였다. 미거 차관보는 우방·동맹을 상대로 한 대화에 "사과가 포함됐느냐"는 로이터통신 기자의 질문에 "일반적으로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 외에 대화의 성격을 특징짓지 않겠다"며 얼버무렸다. 사과는 없었다는 말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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