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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면전만 피하자" 끝 없이 질주하는 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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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기 전까지 ‘물’을 끓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초 '3차 대전 발발'의 위험성을 거론한 것은 미국이었다.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 지원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공격용 무기의 제공을 한사코 거절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7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도심에 폭설이 쏟아지고 있다. 2023.3.7 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말 한 인터뷰에서 전쟁을 "러시아 제재와 3차 대전 중 양자택일"이라고 정의했다. 제재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말이었다.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무리한 요구를 해올 때마다 미국은 '3차 대전'을 말하며 묵살했다.

"제재와 3차 대전 중에서 양자택일"

세계를 경악시킨 순간은 지난해 3월 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서방에 '비행금지구역(no-fly-zone)' 선포와 전투기 제공을 요구했을 때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이를 수락한다면, 사실상 러시아와 전면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3차 대전을 시작하는 것은 분명 미국의 국익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격용 무기 제공 자체를 거부했다.

바이든은 "미국이 공격용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고, 미국인 조종사와 탱크병을 태운 비행기와 탱크와 열차가 (우크라이나에) 가는 것, 그걸 3차 대전이라고 한다. 알겠나(OK)?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제3세계 전쟁을 싸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쟁 초 러시아군이 고전하자 바이든은 슬그머니 목표를 상향했다. 이때부터 3차 대전이라는 금지선(red line) 직전까지 긴장을 높이는 미국의 전략이 시작됐다. 끓는 ‘물’이 넘쳐 전면전으로 가지 않는 선까지 몰아붙여서 러시아의 피해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전쟁이 일상이 된 우크라이나. 한 남자가 6일 러시아군의 부숴진 탱크 앞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고 있다. 2023.3.6 AFP 연합뉴스

4월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미국의 전쟁목표는) 러시아가 약해져 다시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일을 벌일 수 없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즈음부터 3차 대전을 경계하면서도 그 직전까지 한걸음씩 나아가는 미국의 행보가 시작됐다. 바이든은 방어용 무기 또는 군사장비에서 공격용 무기 지원으로 방침을 변경했다. 다탄두로켓시스템(HIMAS)과 재블린 대탱크 미사일을 제공했다.

갈수록 높아지는 우크라 제공 무기 수준

바이든이 '3차 대전'을 의미한다는 무기를 건네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작년 3월 폴란드가 자국 미그29기를 보내겠다고 하자 펄쩍 뛰었지만, 7월 슬로바키아가 미그29기를 보내겠다고 하자 슬그머니 묵인했다. 올해 1월 25일에는 미국 M1 에이브럼스 탱크 31대를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인 탱크병을 보내지 않았을 뿐이다. 한편으로 독일에 최신 레오폴드2 탱크 지원을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대공 무기체계 NASAMS 6대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고, 펜타곤은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패트리어트는 방어용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미국 미사일방어(MD) 망에 포함되는 전략적 의미를 갖기에 러시아가 ‘레드라인’으로 간주하는 무기체계다. 러시아는 "패트리어트를 제공한다면,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이 3차 대전을 의미한다면서 거부했던 전투기 지원 가능성도 짙어진다. 미국은 지난해 11월부터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에게 F-15, F-16 조종훈련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무기 지원 과정을 보면 전투기 역시 폴란드와 독일 등 나토국가 보유기를 보냈다가, 필요하면 미국 전투기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군이 2017년 11월 8일 그리스의 차니아의 나토군 기지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는 장면. 미국이 우크라아나에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레이더를 제공키로 함에 따라 러시아와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은 '제재'와 '3차 대전' 사이의 선택이라는 초기의 개념을 벗어나 제3의 길을 찾기 시작한 지 오래다. 갈수록 임계점에 근접하고 있다. 문제는 임계점이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어느 선까지 미국이 긴장을 유지할 지는 백악관이나 펜타곤도 정확히 예견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예상못할 '임계점'

우크라이나 침공 자체를 '전쟁'이 아닌,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명명했던 러시아는 처음부터 3차 대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궤멸적인 수모에 직면하면, ‘최후의 수단’에 의존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찌감치 제기됐다.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해 4월 "러시아가 전술핵무기 또는 저산출(low-yield)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누구도 가볍게 받아들이면 안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부터다.

푸틴은 12월 7일 "러시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처음 사용하지 않는다면, 두 번째에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달리 핵무기 선제타격 방침을 공표하지 않았지만, 상황에 따라 핵무기 독트린을 바꿀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푸틴은 "미국은 선제타격의 개념을 갖고 (상대방 핵무기에 대한) 무장해제 타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러시아도 이런 개념의 채택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푸틴의 핵무기 독트린 변경 가능성 언급은 미국과 서방의 행동에 대비해 안전판을 확보하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 역시 핵전쟁은 피해야 할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년 가까이 지속되는 가운데 1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한 묘역에 전사한 장병들이 묻혀 있다. 무덤 주변에는 우크라이나 국가가 꽂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4일로 2년차에 접어든다. 2023.02.20 AFP 연합뉴스

푸틴이 지난 2월 21일 국정연설에서 미·러 신전략핵무기 감축협정(뉴 스타트)의 잠정 중단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미국이 중거리핵전력(INF) 협정을 일방 파기한 것과 같이 조약을 파기한 게 아니다. 미국 사찰단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핵기지 정보를 제공할 우려가 있기에 사찰을 거부한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향후 선택에 따라 협상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전선은 지난해 11월 러시아군이 헤르손주 주도 헤르손시에서 철수한 뒤 소강상태의 진지전이 길어지고 있다. 러시아군의 폭격과 드론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가 늘어간다. 유일하게 바흐무트에서 격전이 벌어졌지만, 러시아 정규군이 아니라 용병 집단 와그너 그룹이 수행하고 있다. 푸틴은 지난해 9월 '부분 동원령'으로 추가 병력을 확보해놓고도 결전을 미루고 있다.

우크라 국민, 세계 경제만 고통

그사이 미국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에 주는 외교적, 경제적, 정치적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냄비의 물이 끓어 넘치지 않도록 주의하되, 물이 뜨거워지는 것을 방치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격전지 바흐무트의 어린이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뜨거운 물’에 고통을 받는 건 미국도, 러시아도 아니다. 미·러가 각각의 전략적 셈법에서 해결을 미루는 동안 전쟁의 폐해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일상적으로 전달된다. 에너지 및 식량 파동과 이에 따른 세계의 부수적 피해도 늘어간다. 미국은 에너지·식량난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오히려 국내 고용이 늘고, 경제가 살아나는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일전'을 앞둔 러시아 역시 에너지·식량난을 걱정하지 않는다. 지난해 2.3% 하락했던 경제가 올해는 0.3% 성장으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IMF)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나, 대리전을 치르는 미국이나 모두 문제 해결에 서두르지 않고 있는 증좌는 대화의 실종이다. 미·러 외교장관은 지난 1일 인도 뉴델리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서 조우했다.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토니 블링컨 장관은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에게 뉴 스타트 복귀와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복역 중인 전 미해병대원의 석방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지원을 계속할 방침을 밝혔다. 미·러 모두 협상을 통한 해결에 나설 준비가 안 됐거나, 마음 자체가 없어 보인다. 군사적 긴장은 동아시아까지 넘어왔다. 2023년 봄, 국제정세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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