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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간첩 김동식

Interviewees

by gino's 2012. 2. 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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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아무리 선군정치를 한다고 해도 노동당 우위의 원칙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북한 사회의 촉망받는 엘리트에서 남파간첩으로 변모한 서른살의 젊은이가 있었다. 1995년 충남 부여에서 격투 끝에 체포된 간첩 김동식씨(39). 낯선 남한살이 9년 만에 그가 이제는 북한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어 화제다.

오는 2월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석사모를 쓰게 된다. 논문 주제는 ‘조선노동당의 당적 지도에 관한 연구’. 그는 “남북관계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를 군부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이는 북한 내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는 데서 비롯된 오해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당적 지도’란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은 물론 당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으로 주민들을 무장시켜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그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단지 ‘가방끈을 늘려보겠다’는 허영 때문이 아니었다. 논문 주제를 선택한 계기가 이를 말해준다. “한국에는 그런(북한의 당·군관계) 주제의 논문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그렇다면 북한에서 2년 정도 당 간부 생활을 했던 내가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에서 ‘예비학자’의 사명감이 읽힌다.

종업원 1,500명 정도의 2급 기업소 당비서와 평양시 구역(구)당 조직부장을 경험한 것이 논문에 살을 붙이는 데 적지않은 도움이 됐다.

“석사 논문 자격시험을 치르면서 어려운 영어 때문에 가장 고생했다”는 그는 “당장 박사과정에 진학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생활인으로서 바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학문적) 능력이 있어야 박사과정에서 받아줄 것 아니냐”며 겸손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공부를 계속한다면 북한의 정치, 사회를 깊이 연구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먹물’의 때를 벗지 못해서인가. 동료 간첩이 피살당하는 격투 속에서 살아나온 그는 한때 준수한 외모와 세련된 풍모로 인해 ‘간첩 같지 않은 간첩’으로 불리기도 했다. 체포 전 그와 접촉한 재야인사들이 붙인 별명이다.

마지막으로 “남파 간첩이나 북한 주민들을 희화화한 요즘 영화를 본 게 있느냐”고 묻자 대뜸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보나마나 쓸데없는 내용일 것 같아서”란다. 극적인 인생유전을 겪은 그가 돌고 돌아 제길로 접어든 듯한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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