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휴전] 이란-이스라엘 전쟁 봉합한 트럼프의 '광인 전략'
"우리는 이른바 (이란) '최고지도자'가 어디에 숨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쉬운 표적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죽이지 않을 것이다." (캐나다 G7 정상회의서 급거 귀국한 다음 날인 17일 오전, X 계정)
"미국의 공습은 환상적인 군사적 성공(spectacular military success)이었다. 이란의 주요 핵시설은 완전히 제거됐다." (21일, 이란 공습 뒤 TV 연설)

이스라엘-이란 전쟁의 잠정적 휴전을 유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들어 몇 번씩이나 '미친 짓'을 했다. 정상적인 사고를 완전히 벗어난 광인(狂人)의 언행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때마다 세계는 경악했고, 유가는 출렁였다. 광인의 1인극은 그가 지난 16일 밤 캐나다 앨버타주 카나나스키스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도중 워싱턴으로 급거 귀국하면서 시작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그의 귀국 이유로 '중동 휴전 중재'를 전하자, 적극 부인했다. 자신의 X 계정 메시지에서 "튀는 걸 좋아하는 에마뉘엘은 늘 틀린다. 휴전은 절대 아니다. 그것보다 큰 것이 걸려 있다"고 적었다. '광인(Madman) 전략'의 제1조, 거짓말로 상대에게 확신을 심을 것.
다음 날 아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개최한 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를 했다. 그즈음 X 계정(트루스 소셜)에 올린 메시지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 대한 공개적인 암살 위협이었다. 세계는 다시 놀랐다. 그러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뒤돌아보면, 극비리에 진행해야 했을 암살 계획을 떠벌인 게 심상치 않았다. 미국 언론의 취재에 따르면 암살 계획은 네타냐후 정부가 수립, 백악관에 귀띔한 것이었다. 미리 이를 공개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극단적 행동을 막는 동시에 이란에 정보를 흘려주었다. 하메네이는 이후 일절 종적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2조, 이중 플레이. 그리곤 다시 한번 광인 행세를 했다.


나흘 뒤 전략폭격기 U-2를 동원해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의 이란 핵시설을 전격 공습한 뒤에는 결과를 최대한 과장했다.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공습을 한 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인 성공'을 운운하지 않았을 것. 아무리 벙커버스터(GBU-57)와 토마호크 미사일을 투하했더라도 한 번의 공습으로 지하 핵시설의 완전한 파괴는 불가능하다는 '합리적'인 지적이 쏟아졌다. 중앙정보국(CIA)의 정보 브리핑을 받는 그가 '팩트'를 모를 리 없을 터.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완전히 파괴했다"고 계속 우겼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과 이란이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확산 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 '작은 불'로 '큰불'을 덮었다. 하메네이 암살설을 공개한 것과 구조가 같다. 마지막 이틀이 더 극적이었다.
"정권교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건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 그러나 만약 현 이란 정권이 '이란을 다시 위대하게(MIGA)' 하지 못한다면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겠나?" (22일, X 계정)
"모두에게 축하를! 이스라엘과 이란이 완전하고 전면적인 휴전에 완전히 동의했다. 12시가 되면 이스라엘은 휴전을 시작하고 24시가 되면 전 세계가 전쟁의 공식 종료에 경례할 거다." (23일 미 동부시간 06시 2분, X 계정)
작전일(D-day) 하루 전, 트럼프는 이란 이슬람 혁명정부의 아킬레스건을 직격했다. 그렇지 않아도 2022년부터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던 히잡 착용 반대 시위의 잔불이 남아 있다. 1979년부터 계속된 서방 제재로 인한 생활고에 민심이 돌아서던 시점이기도 하다. 지난 13일 새벽 이스라엘의 전광석화 같은 공격에 공습사이렌조차 울리지 못한 무능한 정부가 가장 두려워한 게 무엇이겠는가. 바로 그 '정권교체'를 확성기에 대고 떠들었다.

"시오니스트 불량국가(이스라엘)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결기를 내보였던 이란 정부를 결정적으로 흔든 한방이었다. 그리고 23일 새벽,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휴전 발표라니. 발표 직전까지 측근의 고위 당국자들까지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 제3조 결정적 순간에는 피아를 모두 속여라. 이란-이스라엘 전쟁을 일단 봉합한 트럼프의 극적인 퍼포먼스였다. 물론 이란 대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갈등은 단번에 봉합할 성격이 아니다. 첫날부터 서로 상대의 공격을 비난하며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위태롭기 짝이 없는 휴전이다. 그러나 이란과 이스라엘 모두 전쟁의 장기화를 피하려는 상황에서 트럼프식 '위기 감소 전략'이 먹힐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꼽아도 무방할 것 같다.
트럼프의 광인 행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조연'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이란은 끝까지 트럼프가 발산하는 자극적인 언행에 휘둘리지 않았다. '절제된 반응'으로 일관했다. 안팎으로 몰린 가운데 선택지가 많지 않았겠지만, 이란이 대책없이 호전적인 선택을 했다면 백약이 무효했을 것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17년 한반도 전쟁 위기 당시로 돌아가 보자. '조연'의 역할이 사뭇 달랐던 사례다. 트럼프가 '화염과 분노' '북한의 완전한 파괴'를 경고하고,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괌 주위 포위사격'을 공언하는 가운데 전쟁 위기가 정점을 향하고 있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과 소련에 구사했던 '광인 전략'이 거론되던 시점이다.

트럼프는 실제로 대북 제한적 군사행동('코피 작전')을 만지작거리고 있음을 흘렸다.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돼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동의)까지 받은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에 대한 지명이 돌연 취소됐다. 차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정확한 경질 이유는 본인도 모르지만, 자신이 백악관의 '코피 작전'을 반대했었다는 사실을 우정 털어놓았다.
북한은 별다른 카드가 없었던 이란과 달랐다. 벼랑 끝까지 대치하다가 트럼프가 내민 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잡았다. 이후 트럼프와 북한 '최고 존엄'은 28번의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세 차례 만났다. 결과는 해피엔딩이 아니었지만.
닉슨의 '광인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9년 의도적으로 광인 행세를 했다. 자신을 극단적인 반공주의자이자 충동적인 인물로 비치게 함으로써 전쟁을 끝내기 위해 북베트남과 소련에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려 했다. 후일 국제정치학자들이 '광인 이론(Madman Theory)'으로 정형화한 방식. 그러나 소련과 북베트남은 '미친 닉슨'을 확신하지 않았다. 의심만 했을 뿐이다. 더 큰 실패의 원인은 닉슨이 외교적 노력을 병행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트럼프는 핵무기까지 들썩이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및 이란과의 막후 외교에 나섬으로써 닉슨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광인 전략'은 한반도 위기에서 비롯됐다. 한국전쟁 종전을 위해 원자탄을 사용할 수 있음을 흘린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먼저 시도했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아이젠하워나 닉슨과 다른 점은 '미친 짓'을 자주 한다는 사실이다. '충격과 공포'로 상대를 몰아놓은 뒤 '빨대를 꽂는 무역 협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역 및 안보 협상을 앞두고 트럼프를 읽는 '내재적 관점'이 더욱 긴요한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