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긴급조치 50년] 그날, 산자가 망자 보듬고 망자가 산자 일으켰다

gino's 2025. 6. 23. 11:00

"동지여! 그토록 어렵게, 그토록 숨막히게, 죽음으로 그대는 사랑을 완성했다."

그날, 산 자가 망자를 껴안고 망자가 산 자를 일떠세웠다. 통곡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던 더러운 시절. 민주주의를 외치며 '그대'가 유명을 달리한 지 41일. 1000여 명이 광장에 뛰쳐나왔다. "의로운 죽음, 암장이 웬 말이냐"며 피 울음을 터뜨렸다.

19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이들이 19일 서울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긴급조치 9호 발동 5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6.19. 시민언론 민들레

박정희 유신독재가 긴급조치 제9호를 발동한 건 1975년 5월 13일. 독재자는 재갈을 물릴 수 있으리라, 안심했을 것. 그러나 아흐레 뒤 '서울대 5.22 시위'가 둑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4월 11일 시위 도중 할복자살한 농대 4학년 복학생 김상진. 뒤늦게나마 진혼가를 읽고, "유신 타도! 독재 타도!"를 목 놓아 외쳤다. 한 달 간의 휴교 기간 고일대로 고인 눈물과, 안으로 안으로 밀어 넣었던 함성이었다. 이날 시위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의 대학에서 저항의 물결이 이어졌다.

19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 6070, 7080 '복학생들'이 삼삼오오 들어왔다.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았을 뿐 50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하는, 잊지 않으려는 이들이 모여 '긴급조치 9호 민주화 투쟁' 50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기념식은 먼저 간 동지를 추모하고, 민주공화국영상공모전 수상작을 상영한 뒤 긴조시대 민중가요를 함께 불렀다.

긴급조치 9호 사건의 변론을 맡아주었던 고(故) 홍성우, 황인철, 이세중, 이돈명, 한승헌, 조준희 인권변호사들의 헌신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했다. 아울러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 판결 이후 형사 재심과 국가배상소송의 지난한 여정을 함께 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에게도 각별한 감사를 전했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긴급조치 선포 사실을 전한 동아일보 지면. 영장 없이 체포, 수색하며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한다는 제목이 보인다. 2025.6.19. 시민언론 민들레

독재자 박정희가 발령한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세상이 미쳐 돌았다.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이 자행됐다. 술집에서 버스 안에서 강의 중에 유신헌법을 비방하는 말 한마디만 해도 잡혀 들어갔다.

유신독재에 맞서 싸웠던 20대 청년학생들은 1987년 6월 항쟁에 넥타이 부대로 돌아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쳐야 했다. 그렇게 한 시절이 흘러간 줄 알았다. 12.3 불법계엄령은 6070이 된 그들을 다시 광장으로 불러들였다. 그곳엔 낯선 20대가 있었다. 종주먹을 흔들며 비장한 구호를 외치는 데 익숙했던 6070은 응원봉을 흔드는 청년들 속에 섞였다. '빛의 혁명'의 일원이 됐다. 국회의사당을 침탈한 공수부대에 맨손으로 맞서는 늙은 시민으로 거듭났다.

긴급조치는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 제53조에 근거해 1974년 1월 8일 1호부터 1975년 5월 13일 9호까지 발동했다. 특히 4년 5개월간 유지된 9호 탓에 학생, 재야운동권, 언론인, 노동자 등 1000여 명이 피해를 당했다. 사단법인 '민주인권평화를 실천하는 긴급조치사람들'은 이날 성명에서 "지난 50년의 민주화 투쟁이 웅변하듯 그 어떤 폭정과 억압도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 없다"면서 "우리는 이 고귀한 민주주의를 굳건히 지켜 나갈 것을 엄숙히 다짐한다"고 밝혔다.

1974년 10월 24일 오전에 동아일보 기자 180여 명, 오후에는 조선일보 기자 150여 명이 박정희 유신 정권이 자행한 언론 침탈에 맞서 자유언론을 수호하고 실천하겠다고 선언했다.

긴조세대의 과거사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2013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뒤에도 피해자의 상당수가 아직도 국가의 진정한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 권력자들의 '재판 거래' 탓에 피해자의 절반가량이 국가배상소송에서 부당하게 패했다. 성명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긴급조치 9호 피해자 재심 특별법안'을 즉각 통과, "사법농단으로 인해 부당하게 박탈당한 피해자들의 헌법적 권리를 온전히 회복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한 까닭이다.

모두에 소개한 '서울대 5.22 시위'는 언론인 장정수(긴급조치사람들 이사, 전 한겨례신문 편집인)가 쓴 '긴조 9호와 반유신독재 투쟁의 대장정'을 참고했다. 1975~1979년 민주화 투쟁사의 일단락이다. (사)긴급조치사람들과 동아일보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함께 펴낸 <긴급조치 9호 선포 50년 반유신투쟁 자료집>에 포함됐다. 그 역시 시위대열에 앞장섰던 청년학생이었다. 

기념행사 1부 세미나에서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세계사에서 본 긴급조치 9호세대 민주화운동의 자리매김' 논문에서 "이념의 용광로 속에서 보수의 재정립과 진보를 추구한 긴조 9호 세대의 이중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며, 한국의 미래를 모색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이 세대에게 생애 마지막 과제가 남아 있다면 민주주의 공감도가 유독 떨어지는 '70대 이상'을 포괄한 노인민주화운동일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 긴급조치사람들'은 작년 12월 내란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확인하고 '빛의 혁명' 세대와의 교감을 시도했다. '50년 시대 연결'을 주제로 민주공화국 영상을 공모한 것. 이날 기념식을 맞아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어느 겁쟁이의 고백'(나이브스튜디어, 감독 임종민)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등 총 11편의 본상 수상작을 발표했다. 상금은  제작지원금을 포함해 총 1700만 원. 지난 3월 4일~5월 24일까지 진행한 공모전에는 총 201명의 참가자가 55편을 응모했다. 

(사)'민주·인권·평화를 실천하는 긴급조치 사람들의 공모 포스터. 2025.4.7. 시민언론 민들레

민주공화국영상공모전 수상작 및 초대작은 공식 유튜브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대상: '어느 겁쟁이의 고백'(나이브스튜디어, 감독 임종민)

 최우수상: '집회 코어룩-이번 시즌 유행: 탄핵 배색 목도리 뜨개 Vlog'(김소현)

 우수상 4편: △'계엄이 성공했다면?(Deep은 우리, 김예찬) △'민주주의를 위한 생존법'(골든데이, 박호겸) △'희망의 외침'(루덴스키, 이세웅) △'멈춰진 시간들'(담음미디어, 유연식)

 청소년상 5편: △ '지금 우리 급식은?'(양산인공지능고 방송부, 홍예나) △'민주주의의 선물 소중한 한 표'(다원중학교 임준희, 지도교사 채용기) △'한국의 몽타주'(석주원) △'130년 전, 정읍에서 잠든 비밀'(드림온씬, 이우윤) △'불빛으로 말하는 민주주의'(이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