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이란 공습? '이스라엘 퍼스트'냐, '아메리카 퍼스트'냐 기로에 선 트럼프

gino's 2025. 6. 19. 13:56

"우리는 (이란의) 이른바 '최고지도자'가 어디에 숨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쉬운 표적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죽이지 않을 것이다." (17일, 트럼프 경고)

"이란이 우리에게 보복하면 이란 내 52곳을 공격하겠다." (2020년 1월, 솔레이마니 암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4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 퍼레이드에서 육군 골든 나이츠(Golden Knights) 대원이 건네준 성조기를 들고 있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9번째 생일을 맞아 오랫동안 꿈꿔온 군사 퍼레이드를 즐겼고, 전국 곳곳에서 집권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면서 그를 독재자로 몰아붙였다. 2025.6.14.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말이 거칠다. 행동보다 앞선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이란 선제공격으로 촉발된 중동의 전운이 17일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향후 결정에 따라 세계가 온통 휘말려 들어갈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트럼프의 의중을 정확히 읽는 게 필요하다.

트럼프의 입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방증이다. 트럼프는 이날 트루스 소셜(X 계정)에서 이란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면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살해를 암시했다. "이란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다"라면서 테헤란 주민 950만 명에게 "살아남으려면 즉각 떠나라"고도 강조했다.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AP통신은 이스라엘이 하메네이를 암살할 믿을 만한 계획을 전해왔다면서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거부했다고 전했다. 백악관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한 보도다.

전날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도중 급거 귀국하게 된 '큰 일'이 이스라엘의 하메네이 암살 계획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트럼프는 전용기 기내회견에서 CBS 방송에 "이란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방식의 '진짜 끝장(a real end)'을 원한다"라고도 했다. G7 정상회의에서는 "휴전이 아니라 더 큰 일 때문에 돌아간다"고 말해 긴장감을 높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공격한 지난 닷새 동안, 각국 언론에서 부각된 말을 되짚어보면 '폭탄'은 트럼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였다. 트럼프는 파국을 막으려는 입장이다. 그동안 행동궤적과도 일치한다.

2020년 1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 드론 폭탄이 터졌다. 바그다드를 방문한 카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살해됐다. 이란이 들끓었다. 당장 이라크 내 미군기지가 공격받을 위험이 제기됐다. 트럼프가 '52곳 공격' 경고를 내놓은 이유다. 이란은 이라크 미군기지 두 곳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저강도 대응일지언정 분명한 보복 공격. 트럼프는 그러나 공언했던 52곳 중 한 곳도 공격하지 않았다. 2017년 북한에 대해 '화염과 공포' '완전한 파괴'를 다짐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지난 5월 21일 예루살렘에서 기자 회견을 하는 모습. 2025.5.21. AP 연합뉴스

트럼프가 당시 중앙정보국(CIA)과 군에 솔레이마니 암살을 명령한 것은 쿠드스군이 지원한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에 의한 미군 피해가 컸기 때문. 이란이 확전을 피한 이유이기도 하다. 5년 전 트럼프가 지목한 표적 52곳을 네타냐후는 지금 실제로 공습하고 있다.

기실, 트럼프를 시험에 들게 하는 장본인은 네타냐후다. 트럼프가 가장 자랑스럽게 강조하는 것은 재임 기간에 새로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방관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이자, 되풀이 강조해 온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모토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지난 5월 24일 웨스트포인트 졸업식 축사에서 "미국이나 동맹이 위협 또는 공격받으면 압도적인 힘과 파괴적인 위력으로 적을 섬멸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여러분은 싸우고 싶겠지만, 나는 싸울 필요가 없게 되도록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1월 20일 취임사에서는 "우리는 이기는 전투가 아니라 끝내는 전쟁으로 성공을 측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 나는 피스메이커이자 통합자가 되는 걸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남기겠다"고 약속했다.

'아메리카 퍼스트'와 함께 트럼프가 강조하는 '힘을 통한 평화'는 호전성과 거리가 멀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국의 힘은 적에 대한 억제력이자, 외교적 지렛대"라고 설명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지난 3월 21일 그의 집무실에서 제공한 유인물 사진. 그가 테헤란에서 열린 연례 노루즈 연설에서 군중에게 연설하는 모습. 2025. 3.21. AFP 연합뉴스

트럼프는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선공을 두고 "훌륭했다(excellent)"라고 추켜세우며 "이란이 물러서지 않으면 더 많은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스라엘을 무한 지원하면서도 가장 곤혹감을 느낄 당사자일지 모른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쏟아지는 이란 미사일을 격퇴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직간접적인 이란 공격에는 아직 가담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란이 미군을 공격하거나 미국의 이익을 해치면 보복하겠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그의 북극성인 '아메리카 퍼스트'에서 비롯된 생각. 2020년 사태의 데자뷔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이 참전한다면 중동 지역 미군기지를 공격할 방침"인 것으로 미국 첩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17일 전한 소식이다. 달리 말하면 미국 참전의 조건은 이란의 미국 공격인 셈이다. 하메네이는 자신을 겨냥한 트럼프의 X 계정 엄포에 "우리는 시온주의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강력한 대응 대상을 네타냐후 정권으로 제한했다. 역시 X 계정 메시지를 통해서다.

트럼프는 17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회의 뒤 네타냐후와 통화를 했다. 통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언론은 이란의 지하 핵시설을 공격할 벙커버스터 등 무력 지원을 거론했을지 모른다는 추측 보도를 내놓았다. 뉴욕타임스는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가 △이스라엘에 정보와 공중급유를 지원하는 최소한의 개입 △미군이 이스라엘군과 함께 이란 핵시설 공습 △미국이 군사작전 주도,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등 3가지 선택지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군은 늘 컨틴전시(비상) 계획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나 실제 전쟁에 돌입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17일 이슬람통합평의회(MWM) 소속 시아파 무슬림들이 반 이스라엘 시위 도중 이스라엘 국기와 미국 성조기를 불태우고 있다. 2025. 06. 17 [AFP=연합뉴스]

문제는 정권에 상관없이 미국이 '이스라엘의 포로'라는 데 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 이후 불변의 사실이다. 트럼프는 우크라전의 조속한 종결을 위해 애면글면하지만, 2023년 10월 7일부터 이란-하마스-헤즈볼라-후티 반군을 상대로 끝없는 전쟁을 벌이는 이스라엘에 돈과 무기를 무한정 쏟아붓고 있다. 네타냐후가 결심하고 트럼프가 따라가는 모양새다. 트럼프가 개입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미국이 개입한다면 전쟁을 피하고, 미국의 재건에 주력하려던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농담'이 될 수밖에 없다. 7월 8일로 다가온 각국과의 관세 협상의 촘촘한 마무리도 어려워진다. 일단 확전이 시작되면 모든 현안이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세계 경제가 출렁이면 달러화 가치는 치솟을 수밖에 없다. 달러화 가치 하락을 통한 재정적자 탈출이라는 트럼프의 지상목표에서 멀어진다. 아메리카 퍼스트냐, 이스라엘 퍼스트냐. 트럼프는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