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와 호주 총선 잇단 '이변'이 세계에 주는 의미
"우리 (노동당) 정부는 호주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와 우리가 이 나라에서 이룩한 모든 것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다른 곳(나라)에 구걸하거나, 빌려 올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해외에서 영감을 얻지 않는다. 바로 이곳, 우리의 가치와 우리 국민 안에서 영감을 찾는다." (3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승리 연설)

앨버니지 총리의 호주노동당(ALP)이 3일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재집권에 성공했다. 노동당은 4일 개표가 76.98%(13석 미정) 진행된 가운데 하원 150석 가운데 최소 86석을 확보할 것으로 관측된다. 보수 자유-국민당(LNP) 연합은 39석 확보가 예상된다. 노동당은 77석으로 간신히 과반(76석)을 넘겼던 2022년 총선에 비해 의석수를 늘렸다. 반면에 자유-국민당은 53석에서 14석이 줄었다. 호주 총리가 연임에 성공한 것은 21년 만이다.
호주 총선은 지난달 29일 자유당의 승리로 끝난 캐나다 총선과 성격이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강압적인 관세 정책이 미친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자유당은 '강한 캐나다(Canada Strong)'를 내세우며 "트럼프와의 관세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다짐으로 국민의 마음을 샀다. 두 나라 모두 안보에선 대미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교역 의존도에서는 차이가 크다.
호주는 교역 다변화와 공급망의 탄력성을 중심으로 경제에서 상당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이제야 유럽연합(EU)과 교역 및 경제협력을 확대하려는 캐나다와 다른 점이다.
2024년 캐나다의 대미 수출액은 4342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75.9%에 달했다. 반면에 호주는 147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2.3%에 불과했다. 각국 정부의 자료를 토대로 한 트레이딩 엑스포트(Trading Economics)의 집계다. 미국은 호주의 주요 수출국 중 중국(1025억 달러), 일본 (306억 달러), 한국(198억 달러), 인도(164억 달러)에 이어 5위에 불과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두 나라에 부과한 관세도 차이가 크다. 호주에 대해서는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25%를 부과했지만 일반관세가 10%이다. 잠정 유예된 대캐나다 관세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25%이다.

호주 총선에서도 '트럼프 효과'는 있었다. 노동당은 캐나다 자유당과 마찬가지로 지난 1월 만해도 고전이 예상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유-국민당의 보수연합에 밀렸었다. 물가 상승과 집값 급등 탓에 재집권 전망이 불투명했던 것. 트럼프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데다가 대미 무역적자국인 호주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판세가 움직였다. 트럼프발 글로벌 불확실성이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으로 떠오른 것. 1일 여론조사기관 레드브릿지 엑센트 조사에서 응답자의 48%가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을 가장 큰 우려사항으로 꼽았고, 42%는 보수의 원전 건설계획에 불만을 표했다.
승패를 가른 것은 국민적 정서를 오판한 자유-국민당의 패착이었다. 보수연합은 △이민 축소 △공공서비스직 감원 △원전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보수연합을 이끈 피터 더튼 자유당 대표는 트럼프 스타일의 선거유세를 반감을 샀다. 이 와중에 부과된 트럼프 관세가 유권자들의 정서에 불을 지른 것.
호주 총선은 대미 교역 의존도가 낮은 나라에도 '반 트럼프 정서'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더튼 대표는 피에르 포일리에브르 캐나다 보수당 대표와 나란히 자신의 지역구에서 낙선했다.
캐나다 자유당과 호주 노동당 등 중도 좌파 정당의 잇따른 선거 승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각국의 중도 좌파가 득세하는 것은 트럼프 1기와 구분되는 현상의 하나다.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와 맞물려 출범한 1기 때 각국 선거의 특징은 우파 포퓰리즘의 물결이었다. 반 제도, 반 엘리트, 반 세계화를 내세우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면서 '브라질 트럼프(자이르 보우소나루)' '필리핀 트럼프(로드리고 두테르테), '헝가리 트럼프(빅토르 오르반)' 등 트럼프의 아바타가 속출했다. 서유럽에선 여전히 우파 포퓰리즘이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보수당이 집권했던 영국에서는 노동당 내각이 들어섰다. 트럼프의 '우파 포퓰리즘 대 중도좌파'의 구도가 속속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대표적인 자원부국인 캐나다와 호주에서 '반트럼프 정서'가 확산하는 것은 자원확보와 기술우위를 통해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나려는 트럼프의 구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을 체결하고, 그린란드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한쪽에서 벌고, 다른 쪽에서 잃는 게임이 될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물론 호주와 캐나다가 반미로 돌아서는 것은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앨버니지 호주 내각은 미국-일본-인도와 함께 쿼드(QUAD) 그룹의 일원이자, 중국의 해상 파워가 커지는 인도태평양에서 미국과 긴밀한 안보 협력을 계속할 게 분명하다. 6일 워싱턴에서 트럼프와 처음 대면하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역시 무역과 안보를 놓고 녹록잖은 논의를 해야 한다.

다만, 두 나라 총선에서 확인된 것은 트럼프의 압력에 미리부터 맥없이 굴복하는 지도자는 결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국민 정서와 대외 협상은 무관치 않다. 국민의 지지는 트럼프와 어려운 협상에서 '여지'를 마련할 동력이기 때문이다. 시한부 권한대행 정부의 통상협의팀이 벌써부터 트럼프의 미국이 상찬하는 '최선의 제안(A game)'을 헌납한 동아시아 분단국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